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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해

가끔 하루가 버겁게 느껴질 때

by 내가 지은 세상

회사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어떤 날은 꽤 살만하지만 어떤 날은 그냥 무너져버릴 것만 같다. 회사에서 기획자로서 오롯이 스스로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과제가 있고, 집에서는 아직 어린 딸의 인생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 못해 짓눌려 일어나기조차 힘들다. 온몸이 물을 가득 머금은 모래처럼 축 처져, 한걸음 한걸음 무거운 발걸음을 떼가며 버틴다.


아이가 밥 먹는 양은 적지 않은데 편식이 매우 심하다. 나를 닮아 냄새에 민감해 식당을 가면 냄새난다고 몸부림치며 나오기 일쑤이고, 새로운 음식은 열 번 권하면 한번 정도 시도해 보는 편이다. 소아과에서도 소고기는 꼭 먹여야 한대서 안 먹는걸 최대한 얇게 썰린 불고기용 고기에 참기름을 찍어 먹였었는데, 요즘은 그조차 먹지 않는다. 거의 다지다시피 해서 주어도 질기다고 뱉어버린다. 유일하게 잘 먹던 김조차 질기다고 뱉어버려 요 며칠은 맨 밥에 좋아하는 올리브 절임 몇 점 얹어먹은 게 전부다. 어떻게든 단백질을 보충하려고 우유만 꾸역꾸역 한 컵 씩 먹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표준 이상의 몸무게와 키로 태어나서, 42개월인 지금은 키가 10%, 열명이 있다면 그중 제일 작은 키에 속한다. 영양과 성장이 걱정이 되어도, 아이 입에 억지로 음식을 욱여넣고 삼키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날은 자려고 누우면 내가 좀 더 요리를 잘했으면 달랐을까 내가 아이 식습관을 망쳐버린 건 아닌가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기저귀 떼는 것도 여전히 조심스럽게 기다리는 중이다. 30개월쯤 시도했다가 아이가 변기에 안 앉으려고 배가 아파 바닥을 구르면서도 하루 종일 대소변을 참는 것을 보고 때가 아닌데 무리해서 시도했구나 싶어 포기했다. 내년이면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하며 조급한 마음이 다시금 올라오려고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말해달라고 하고, 타이밍을 보아 변기에 한 번씩 앉혀보지만, 조금이라도 강요했다가 또 트라우마만 생기게 할 것 같아 아직 조심만 하고 있다.


유치원은 또 어딜 보내나 고민하다 보면 결국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를 생각하게 된다. 돌봄을 우선시하는 어린이집에 계속 보낼지, 학교에 적응을 잘하게 된다는 병설유치원에 보낼지, 영어교육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립 유치원을 보낼지 고민하다 보면, 어떤 가치를 중시하여 교육을 시킬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회사에서 나름 기술의 최전선이라는 AI 서비스를 직접 기획하며 체감하는 근미래는, 우리의 교육이 지향하는 바와 영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지금 아이들이 받는 교육으로는 미래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물길을 거슬러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에, 한편으로는 남들 하는 대로 사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런 복잡하고 정답이 없는 육아 문제들과 회사에서 미처 해결되지 못한 이슈들이 내 마음을 짓눌러, 소화는 안되고 누군가 위를 쥐어짜듯 속이 답답하다. 정신없이 할 일들에 휩쓸려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이까지 재우고 잠자리에 누우면, 그제야 낮에 고생한 팔다리들이 얼얼하고 저릿저릿한 게 느껴진다.


이럴 때 되돌아보면 삶은 대개 버거웠고,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무거웠던 것 같다. 언제 행복한 때가 있었나 싶고, 여기까지 생각이 들면 내 아이는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원래 누구에게나 인생은 살아내기 어려운 것이기에 딱히 나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몰려온다.


이런 날은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에게 긴 시간 동안 마음을 다 털어놓으면, 엄마는 그저 잘하고 있다고, 회사 다니며 아이 키우는 것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라고 한다.


"너한테 아이가 너무 소중하고 이쁘지? 엄마한테는 네가 그래. 다 컸어도 너무너무 소중하고 예뻐. 엄마한테는 네가 삶을 사는 이유이고 행복의 원천이야.

엄마가 혹시 주제넘게 오지랖 부릴까 봐 걱정되어 조심하는 거지, 네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손을 뻗기만 하면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어. 엄마는 언제까지나 너를 도와줄 거야, 언제까지나. 힘들면 얘기해."


엄마는 지금도 근처에 사시며 매일 아이 등하원을 도와주고, 매번 우리 먹을 반찬까지 냉장고에 넣어놓고 가신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더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다고 한다.


너무나 감사하고 안심이 되면서도, 언젠가 엄마가 없을 무서운 날들도 같이 떠올려보게 된다.


언제 행복한 때가 있었냐고? 지금이야 지금. 엄마가 살아서 내 곁에 있는 지금이 행복한 때라고, 내 마음이 소리치고 있다.


너무 힘든 날에도 아이를 보면 웃음이 나고 아이를 안아줄 힘이 난다. "사랑해"라고 말하면 "나도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아이를 꼬옥 안아준다. 나의 엄마에게, 나도 그런 딸인 거다.


힘들어도, 아이를 품에 안으며 또 엄마에게 기대가며 하루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지내다 보면, 또 다른 날인 내일이 오고, 모레가 오고, 다음 달이 오고, 내년이 오겠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들도 잘 끝나고 아이도 훌쩍 자라 있겠지. 다만 엄마는 너무 늙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가끔,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니까, 오래도록 곁에 있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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