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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고

글을 신중하게 써야 하는 이유

by 내가 지은 세상

고1 즈음부터 자의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한동안 뜸할 때도 있었지만, 꾸준히 글을 써온 것 같다. 하지만 내 글을 타인에게 공개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음으로 내 글을 공개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 때문이었다.


건강 문제로 휴직하고 시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종교 잡지에서 여는 건강 아카데미에 갔다가, 편집실 직원 눈에 띄어 강연 후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는 강연에 젊은 처자가 참석해 눈에 띈 것 같았다. 후기를 써 달라는 말에 깜짝 놀라, 보내볼 수는 있는데 별로면 꼭 폐기해 달라고 부탁드리고는 요청을 수락했다. 강연에 참석하게 된 계기, 강연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분위기, 강연 중 인상 깊었던 부분, 강연을 들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과 나의 다짐들을 빠짐없이 적고, 쉽게 읽힐 수 있는 한 편의 글이 되도록 다듬고 다듬어 메일로 보냈다.


생각지도 못하게 편집실에서는 글을 보자마자 너무 좋았다고 했다. 원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여러 번 수정 과정을 거치는 게 일반적인데, 내 글에는 수정하거나 덧붙일 부분이 없었다며, 편집실 직원들 모두 함께 기뻐했다고 했다. 워낙 편집실 반응이 좋았어서 바로 다음 호에 실릴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호, 그다음 호, 그리고 그다음 호... 아무리 기다려도 글은 실리지 않았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은근히 서운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편집실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다음 호에 내 글을 싣게 되었다는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저작권 관련한 동의서를 작성했다. 몇 주 후, 나는 세상에 공개된 나의 글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햇살이 따사롭지만 바람은 시원했던 초여름에 썼던 글을, 눈 내리는 깊은 겨울이 되어서 다시 읽게 되었다. 나는 다시 초여름으로 돌아가, '맞아 나 이런 점을 느꼈었지, 이렇게 다짐했었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보자, 실천해 보자!' 하고 마음을 바로잡고 있었다. 내가 쓴 글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를 위해 글을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회사가 하도 뒤숭숭해서 사주를 보러 갔더니, 나는 지금 꽤 힘든 시기를 지나 보내고 있다고 했다. 계절로 치면 지금은 여름이라 견뎌야 하는데, 3년이 지나 추수의 계절이 오면 인내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고 한다. 가을이 기다리고 있기에 지금의 무더운 여름을 버텨야 하는 거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꼭 지금만 힘든 건 아니었고, 남들 보기에는 순조롭게 살았다는데도 늘 마음은 고비를 넘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기도 하다. 글로라도 정리하고 풀어야 휴우하고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글이든 너무 사납지 않게, 결론은 꼭 희망으로 마무리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한번 글로 남겨진 것은 그 힘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도 내 글을 앞에서부터 다시 읽고 쓰고, 또 처음부터 다시 읽고 이어 쓰기를 반복하는데, 짧은 글을 쓰면서도 몇십 번은 읽으며 쓰는 것 같다. 글을 다 쓴 후, 내 손을 떠나보낸 후에도 종종 이전에 쓴 글들을 다시 들춰본다. 내 글을 다시 읽으며, 내가 쓴 글에 스스로가 세뇌가 된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글을 열어볼 때에는, 이미 기억은 희미해져 있고 글만 남아있다. 당시의 사실은 이미 사라져 있고, 이제 내가 남긴 글만이 유일한 사실이 된다. 나는 내가 남긴 글을 '사실'로 믿게 된다. 그래서 글을 함부로 쓸 수가 없다, 절망으로 마무리할 수가 없다. 언제고 내 글을 다시 찾아올 미래의 나를 위해 글 안에 희망을 남겨두어야 한다.


3년이 지나면 정말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때까지, 이 글이 나의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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