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계획

생각과 고독은 휴가에만 가능한 이야기인가

by 램프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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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거창한 걸 올려야 할 것만 같은 브런치.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바쁘기도 했고, 올리기 어려운 글을 진솔하게 쓰지 못하기도 했다.

쓰다 말다, 쓰다 말다 하다가 150일이나 글을 올리지 않았다는 알람을 받았다.

그래서 가벼운 휴가 이야기나 한번 하면서 물꼬를 터보려 한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공동 휴가로 여름/겨울 2번 휴가가 있는데 보통 성수기가 끝나는 8월 중순~말쯤 휴가가 잡힌다. 남편의 회사도 공동 휴가인데, 7월 말 정도에 항상 휴가가 잡혀 결혼하고는 본격적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가 본적이 별로 없다.


결혼하자마자 코비드 19가 덮친 것도 있지만, 일하는 배우자를 두고 혼자만의 휴가를 가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울릉도에 사는 친구의 제안으로 남편은 휴가에 울릉도에 가게 되었다. 마침 남편의 휴가 일정과 겹치는 일정으로 친구들이 울릉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울릉도는 둘 다 전부터 백패킹으로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 었기 때문에 남편도 고민하는 눈치라 꼭 다녀오라고 몇 번 이야기하자, 조심스럽게 배값이 비싸다며 알아보곤 나에게 이야기하며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럼 이번 휴가 때 나는 뭐하지?

항상 휴가가 닥쳐 비행기표나 숙소를 알아보다가 터무니없이 비싸진 가격이나 원하는 일정의 표가 없어서

집에 머물거나 서울의 호텔에 1~2일씩 묵었던지라 이번 기회에 숙소나 미리 예약할 겸, 주말을 이용해 휴가 계획을 짰다.




지리산 이야기

엄마의 엄마의 고향은 남원. 외할머니의 고향이 남원인지라 엄마는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종종 지리산에 갔다고 했다. 엄마는 지리산의 변화무쌍한 날씨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한국에 있는 산 중 가장 무섭다고 했다. 반면 내가 처음 본 지리산과 섬진강은 마냥 따스하고, 위로가 되는 곳이었다. 처음 가본 것은 스물대여섯 살 때였다. 친구와 5월 휴가를 내려간 곳. 시간이 많이 지나서 왜 그때 하필 지리산을 가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곡성까지 KTX를 타고 가서 첫날은 가정마을에 들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표지판이 무색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섬진강을 끼고 무성한 녹음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그렇게 하루를 잘 마치고 다시 곡성에 돌아와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려는데 갑자기 친구가 남자친구 가족의 모임에 가야 한다면서 (!) 날 둔 채 집으로 가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황당한 일인데, 이번 기회에 혼자 여행이라는 걸 해보자. 라면서 친구를 보내주고 나는 다음날부터 정확히 일정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2일 동안 쌍계사, 노고단, 구례의 작은 마을들. 어쩌다 보니 이곳저곳 나름대로 혼자 정처 없이 둘러보고 떠돌아다녀보며 여행을 즐겼던 것 같다. 혼자 올라가서 등반객에게 부탁해 찍은 노고단 정상비 앞에서의 사진이나, 구례의 한옥 마을들의 정취, 그리고 지리산 자락에 있던 낡은 게스트하우스 같은 것들이 맑은 날씨와 어우러져 아직도 기억 한 구석에 남아있다.


그 뒤에도 동료나 가족들과 지리산을 갈 때면 나는 항상 지리산이 좋았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차까지 유명하니 더 바랄 것이 없는 곳으로 멀지만 갈 때마다 비가 오든 해가 비추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 산이 좋았다. 작은 재첩 껍데기가 가득한 섬진강의 부드러운 모래섬도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박경리 선생님이 남기신 이야기 중,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고독하지 않고 글을 쓴다면 참 이상한 일 아닙니까? 여러분은 좀 자주 고독해보세요. 고독하지 않고서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고독은 즉 사고이니까요.

이번 여행에는 고독이라는 걸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정리해야 할 생각 몇 가지를 들고 가서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쉬면 그저 놀았고, 일하면 그저 일했는데.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싶어졌다. 쉬는 동안 그저 놀아도 고독이라는 걸 느낄 일이 없었다. 근데 일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과 하루 종일 부딪히는데도 고독하다고 느낄 날이 많아졌다. 진정 고독해본 적, 나는 있었나? 진정 생각이라는 걸 정말 해본 게 언제였을까? 이런 여행 목적에 맞는 여행 일정을 잡아봤다.


첫날 : 구례구역 도착 / 천은사 템플스테이 (2박 3일)

천은사는 구례군 지리산에 있는 사찰이다. 쌍계사,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의 하나로 신라시대 창건되었다. 역사가 유구하지만, 지리산에 있는 3대 사찰 중 가장 소박해 보이는 면모가 눈에 들어왔다. 사찰의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있고(지리산인데 오죽하랴) 혼자 걸어가는 여행인데 조용한 숙소를 고르자니 먹거리 해결이 되지 않는 점이 난감했는데 템플스테이라면 그럴 걱정이 없겠다 싶었다. 또 이번에 템플스테이를 고를 때는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 있는지 여부를 보고 결정했는데 천은사에는 신청하면 스님과의 차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둘째 날 : 천은사에서의 하루

이틀간 한 번이라도 새벽 예불을 드려볼 요량이고, 아침을 먹기 전 아침산책을 해볼 생각이다. 중간중간 명상 의자라는 것이 있던데, 거기서 가져간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셋째 날 : 천은사에서 나와 구례 오일장을 보고 에어비앤비로

구례에서 하동으로 넘어갈 생각인데, 이 날 장이 열릴 것 같아 구례 시내로 먼저 나가 커피도 마시고 장날 파는 음식을 몇 가지 사서 다음 숙소로 갈 예정이다. 시간이 허락하면 몇 가지 소품샵을 가보려고 하는데 걸어 다니다 보니 맘대로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택시는 가급적 타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다. 셋째 날 1박 2일로 예약한 곳은 차를 만드는 다원이자 에어비앤비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 역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 조용한 마을, 다원 주인 분과의 차담, 깨끗하고 아늑한 숙소라는 몇 가지 장점 때문에 예약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만큼은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니라 조용한 마을에서 긴장감 없이 쉬고 싶었다.


넷째 날 : 다시 구례 시내로, 바이자 숙소인 에어비앤비

이 날은 남편도 주말을 맞아 구례로 기차를 타고 올 예정이다. 함께 몇 가지 관광지나 맛집도 들리고, 쉼이 아닌 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동 다원의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차담 프로그램이나, 차나 그릇을 파는 곳에서 쇼핑하고, 우연히 발견한 바이자 숙소인 곳에서 와인도 마시고, 잠도 자려고 한다. 3일간 숲 속에 있을 예정이니, 넷째 날은 구례 시내에서 저녁을 보내며 웃고 떠들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는 무겁고 귀찮겠지만, 이북 몇 권과 종이책 1권, 노트와 만년필을 가져갈 생각이다.

앉아서 진득하게 고민하고 생각해볼 예정이다.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 초여름에 늦여름 여행을 계획했다. 여름은 언제나 나에게 호우시절이지만 유독 올해 여름은 빨리 가고 8월이 성큼 다가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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