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연초의 기록

겹겹이 껴입은 감정으로 더웠던 12-1월의 기록

by 램프아이


매일 브런치해야지, 생각은 하고 있는데 인사발령 이후 내 인생은 도통 회사 생활에 잠식당한 채 정상으로 돌아오질 못하고 있다. 물론 만 2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상궤도로 돌아가고 싶은 나의 마음은 꽤나 조급하다. 12월과 1월의 관심사와 여러 단상들과 기록들




#다양성

최근 회사에서도, 개인적인 삶에서도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찌나 다른지. 생각도 취향도 행동도,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하게 살아왔는데도, 내 환경에 놓인 그들도 나와 이렇게 다른데.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글을 읽어봐도, 정말 세상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다름"을 "틀림"으로 판단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솔직해보자면, 나와 다른 답변을 내놓는 사람들이 못내 얄미운 적도 많았다. 나와는 극히 [다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님에도, 나와 달라 싫었고 그가 [틀리] 길 바란 적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그런 나 자신이 싫었음을 인정해야 하리라.

그러나 내 주변 환경들이 급변하면 할수록 나는 "다양성"을 더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법을 배워나가는 내가 좀 싫기도 하다. 왜 나는 좀 [편협]해서. 이런 걸 배워나가야 할까 싶기도 하니까.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이 사람은 나와 달라."를 사실 그대로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찾아보기 힘들다. 업무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 유독 그러하고, 개인의 취향과 습관,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도 입을 대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새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취향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특히 어릴 때, 회사에서 "램프아이는 참 특이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개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취향이 당시 회사 선배들 눈에는 "특이함"으로 비추어졌나 보다. 근데 그 특이해라는 말이 영,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생각하기에 [특이해]라는 말의 맥락은 [넌 우리와 달라] 혹은 [너 참 이상하다]로 들리기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나의 색깔을 숨기다 못해, 돌아보니 조금씩 무채색 인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다양성을 스스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어찌나 지루한지. 그래서 앞으로라도 [넌 좀 독특해]라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훈련을 의도적으로 하려고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에잇, 이 지루한 사람아. 하고 웃어넘기련다.




#키보드와 만년필

나도 무접점 키보드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약간의 장비병은 한국인의 미덕인지라, 요가를 시작하면 만두카, 캠핑을 시작하면 헬스포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자면 아이패드... 무수한 장비의 역사가 내 머릿속을 스쳐가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최근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집에 노트북을 가져와서 일할 때마다 불편함을 겪다 보니 데스크 셋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회사 보안정책으로 인해 집에 있는 컴퓨터로는 업무를 볼 수가 없어 모니터와 키보드를 집 컴퓨터(남편 게이밍 목적)와 내 노트북에 전환해가며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대충 다음과 같은 가이드를 정했다.
1) 블루투스와 유선이 동시에 되는 키보드
2) 키감이 좋고, 일할 맛이 날 것
3) 브런치 쓸 맛 나게 예쁠 것 (?)
이 세 가지의 요건을 놓고 찾아보았는데, 찾다 찾다 #해피해킹까지 구매 대상 목록에 들어갔으나 해피해킹은 대부분 텐키가 없는 모델이었고, 텐키가 없어야지만 제 값어치의 아름다움을 하는 키보드였다. 결국 실용성 및 가성비와의 끊임없는 대타협 끝에, 한성 무접점 키보드 GK898B 모델(텐키버전), 너로 정했다!

IMG_2046(1).jpeg @우리집데스크

사용 후기는 입문용 무접점 키보드로 괜찮은 가성비와, 나 초등학생 시절 컴퓨터실에서 사용했던 90년대 스타일의 레트로 디자인이 참 맘에 든다는 점, 특유의 키감과 타자 소리가 나와 잘 맞는다는 점... 등으로 인해 굉장히 만족한 소비가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최근 기획적 업무로 인해 글과 메모를 쓸 일이 늘어나다 보니 쓸데없는 장비가 떠올랐다. 좋은 필감의 펜을 사용하고 싶은 니즈가 지속적으로 있었는데, 예전부터 진입장벽이 높아 몇 번 찾아보고 말았던 만년필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게 된 것이다.

일단 입문용으로 [카웨코]사의 스튜던트 만년필 한 자루를 구입했다. 내가 구입한다고 하니 왕발이가 이런 건 선물 받아야 기분이 좋다며 결제해주었다. 그 만년필에는 "Lampeye"라는 조각 각인을 하기로 했다.

카웨코.jpg

설 명절이 지나 택배가 출발했단다. 이번 주는 만년필 기다리는 재미로 설요병(?)을 견딘다. 사실 [트위스비 에코] 만년필이 입문용 추천템으로 제일 선호가 많은 아이템이었는데, 비교적 두꺼운 만년필으로 두꺼운 펜을 싫어한다는 점과 스튜던트보다 예쁘지 않다는 점으로 인해 밀려났다. 카웨코의 스튜던트를 결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바디 둘레가 적당하고 올리브 색상과 아이보리 색상의 조화가 맘에 들었다

2) 금장 펜촉이 예쁘다

3) EF 촉을 사려니 일본 것은 너무 얇다는 평이 많아서 유럽 EF펜촉이 비교적 적당히 얇다는 후기가 많았다.

도착하면 사용해보고, 카트리지를 사용할지 컨버터를 사용할지 결정해야겠다. (사실은 잉크도 사고 싶고 필감 좋은 종이도 사야한다...소낳소)





#명절이여 돌아오라

이번 명절은 정말 별일 하지 않고 보냈다. 1박 2일 동안 시댁에 다녀왔을 뿐. 아버지의 성묘와 친정은 설명절 전 주에 다녀왔다. 시댁에 가서도 하필 그날과 겹쳐서 월요일에는 배와 허리가 아파 조용히 왕발이 방에 기어들어가 낮잠을 잤고, 밥만 축내다 온 것 같다. 결혼 후 첫 명절에는 당연히 힘들었다. 일단 큰 아버님 댁에서 치르는 제사에 참여하고(그때도 요리는 거들지 않았지만.) 당일 호국원에 가서 시할아버지를 기리고, 혼자 사시는 큰 고모댁에서 친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점저를 먹고, 마지막으로 외할머님 댁에 방문하는... 그야말로 명절 1박2일 풀코스로 모십니다... 였다. 항상 명절=휴가 집에서 놈팽이 짓을 하던 우리 집과는 정말 다른 분위기였다. 나에게 명절은 항상 휴가였는데! 결혼은 내 시간을 도둑질하는구나! 누가 결혼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결혼해놓고, 어른스럽지 못하게 짜증이났다. 짜증은 이동 중 자동차 안에서 지친 내 표정과 함께 숨을 길이 없었다. 역력한 피곤함을 시부모님도 눈치채셨고, 첫 명절을 치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엔 남편과 다툼과 짜증의 이중주를 질러버렸다.
그러나 남편이 조율하기도 전, 다음 명절 시부모님이 먼저 나를 배려해주신덕에 큰 갈등 없이 명절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호국원 방문은 평소 방문 시 개별적으로, 큰 고모댁은 방문하지 않는 등의 조율이다.
최근 코로나 핑계로 어머니와 나는 제사 음식을 하러 가지 않는다. (아버님의 은근한 고집과 여러 눈치 때문에, 어머니는 투병 중에도 제사음식을 하셨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지만... ) 사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어느 집에나 흔히 있는 여러 갈등과 기싸움 때문일 거다. 큰 아버님의 아들, 즉 남편의 사촌동생은 곧 결혼 예정인데 아들 내외 외가 결혼하면 제사는 안 치르게 하신다고 하면서, 나의 참석은 큰집에서 은근 기대하는 눈치이니 남편과 어머니가 화가 나실 만도 했다. 나 역시 그 말을 듣곤 뒷줄기부터 짜증이 확 뻗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결혼 만 2년 차인 나는 꿈뻑꿈뻑 [아무것도 몰라요] 눈빛으로 어머님을 따를 뿐. 며느리가 들어왔기 때문에 감수하는 결정과 불편이 있는 걸 알기 때문에 감사하다. (놈팽이처럼 맨날 먹고 자고 오는 며느리가 점점 싫어지실 수도... )

IMG_2034.jpeg @그림자식물원(feat.시댁)

시댁에 나날이 식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어머님은 도예와 제라늄 기르기가 취미인데 시댁에 놀러 갈 때마다 식물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직접 만드신 화분과 직접 파종한 제라늄을 판매도 하신다. 취미로 돈까지 벌 수 있다니. 진정 우리가 꿈꾸는 N잡의 모습을 어머니를 통해 본다. 놀라울 따름. 게다가 사업수완도 꽤 좋으셔서 취미로 시작했지만 네트워크도 잘 다져가시면서 판로를 개척 중이신 것 같다. 배울 점이 많다.

남편과 아버님이 제사 지내러 간 반나절 동안, 어머님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님은 10년만 젊었을 때 좋아하는 꽃과 도예를 알게 되었더라면 날아다녔을 거라고 했다.
[어머니, 나는 아직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이렇게 늦게 알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어머님은 약 5년여 전 암투병을 하셨었고, 지금은 다행히 무탈하게 지내고 계신데, 그때 이후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아들과 며느리 내외에게도 흔히 있을 법한 고부갈등의 원인이 되는 아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나 며느리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없으시다.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 중 본인의 삶에 제일 충실한 사람인 듯하다. 그래서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나가다 보니 중요한 감정과 느낌을 기록하지 못한 채 서슬 퍼렇게 시간이 지나간다. 연말과 연초는 가족이 있어 따뜻했고, 때로는 눈물 났다. 엄마 그리고 동생과 남편과 함께 성묘를 갔다. 그곳에 가면 언제나 눈물을 참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서라기보다 남겨진 엄마가 지금 바로 이 순간 옆에 있어도 애틋하기 때문이다. 명절에는 곁에 없는 사람을 기리는데 살아있는 가족을 혹사시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항상 생각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살아있는 가족에게도 잘하기 쉽지 않다는 걸 매주, 매달 생각한다. 그리고 아빠의 소주는 잔디만 적셨다. 그렇게 2022년도 겹겹이 쌓인 감정들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