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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Feb 03. 2023

오해해서 미안해

San Antonio, TX

4년 전 처음으로 텍사스의 한 도시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도착한 다음 날 아침 호기롭게 혼자 운동을 하러 호텔을 나섰다. 어두운 저녁시간도, 후미진 동네도 아닌 오전 10시, 번화가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에이 오버하지 말자, 이렇게 날이 밝은데?'라고 하기엔 주변에 사람이 너무 없었다. 바로 길 건너 공사현장에 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도 없는 길보다는 낫겠지 하고 길을 건넜다. 그냥 지나가 주길 바랐지만 그 사람도 나와 같이 길을 건넜다.


나는 안전에 있어서는 겁이 곱하기로 많다.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달릴 거다라는 메시지를 전달이라도 하듯 스트레칭을 한 번 하고 천천히 달렸다. 하지만 보란 듯이 그 사람도 나랑 페이스를 맞추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어제 같이 온 기장님을 딱 마주쳤다. 너무 잘 됐다 싶어 반갑게 아는 체를 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면 같이 가겠냐고 물어봤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아니지만 호텔로 데려다주겠다며, 혼자 돌아다니기에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자기처럼 나이 많고 뚱뚱한 백인 아저씨는 언제 돌아다녀도 괜찮지만, 너처럼 이쁘고 젊으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고... 내 마음을 배려해서 조심스럽게 말해주는 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나는 텍사스가 조금 무서워졌다. 그 이후로 내게 텍사스는 양이 정말 많은 바비큐, 덥고 습한 여름 날씨, 총기사건, 아시안 여자가 혼자 돌아다니기 위험한 도시 정도로 굳어졌다.


이번 비행은 텍사스 주 내 한 도시에서 19시간가량 머물렀다. 밤늦게 들어와 그다음 날 저녁에 다시 나가는 스케줄이라, 떠나는 날 점심쯤에 나가서 커피라도 사 마시고 올 까 했다. 날도 워낙 덥거니와 혼자 돌아다니는데 최고의 도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아직까지 있던 터라 살짝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혼자 시작한 소박한 프로젝트 - 레이오버하는 도시마다 단골 가게를 만들기 - 를 생각하며 이 도시에도 내가 안전하게 느끼고 즐겨 찾을 수 있는 카페 한 군데 정도 알아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도를 펼쳐서 호텔에서 멀지 않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중에 카페 몇 군데를 살펴보았다. 내부 사진을 보며 혼자 앉아서 책 읽기에 괜찮은 공간이 있는지도 나름 꼼꼼히 따져본 후 길을 나섰다.


평일 낮이었는데도 도로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왜 이 넓은 도로, 많은 사람들 중 아시안이 하나도 안 보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약간의 긴장과 설렘을 안고 들어간 카페에는 역시나 사람이 꽤 많았다. 물론 아시안은 없었다. 주문을 받는 바리스타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아무 노래도 나오고 있지 않은 에어팟을 끼고 있었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게 간단하게 답했다. 이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기보다는... (인정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내가 보기 흔하지 않은 아시안이라 이렇게 살갑게 구는 건가?' 하는 피해의식 비슷한 생각이 피어오른 것이었다. 커피를 내리면서 다시 한번 말을 걸어왔다. 한쪽 귀에서 에어팟을 빼며 이전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마음으로 대답을 하고 나도 질문을 했다. 돌아오는 휴일에 무슨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 서로 묻고 답했다. 사라지지 않은 어색함과 함께 커피를 받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책을 읽는데 집중이 안 됐다.  나 본인도 서비스업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누군가의 친절한 한마디를 왜 그대로 받지 못하는 걸까?라는 질문에 혼란스러웠다.


14살 처음으로 해외 유학을 떠났다. 그때는 외국으로 나가서 산다는 게 어떤 걸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유학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좋아했던 것 같다. 해외에 나가서 산다는 것, 공부한다는 것은 실로 큰 특권이자 감사해야 할 일이 맞다. 하지만 막상 나가서 생활해 보니 유학이라는 환상 속에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부분이 참 많았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가장 큰 벽이라고 느껴지는 두 가지는 나는 절대 '주류'에 속할 수 없다는 한계와 실제 피부로 느껴지는 차별인 것 같다. 이 두 가지 생각은 내 안에 피해의식이라는 나무로 뿌리 깊게 자랐는데, 이 때문에 (피해의식 뜻 그대로) 내가 피해를 입지 않는 상황에서도 피해자인 척 위축되거나, 타인의 행동이나 말을 왜곡되어 받아들일 때가 종종 있다.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분명히 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제한적이라고 느낀 적이 분명히 있다.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누가 봐도 분명한 차별이었고 한계였다. 하지만 차별이나 한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방어적으로 나올 때 또한 너무나 많다. 나는 무엇 때문에 저 바리스타에게 잔뜩 날을 세웠던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왔을 때 내 또래정도 돼 보이는 아시안 여자 두 명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익숙한 듯 주문을 하고 바리스타와 몇 마디 나누더니 웃으면서 커피를 받아 들고 카페를 떠났다. 가서 사과하고 싶었다.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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