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과일주, 내 마음 별과 같이, 죽음
외할머니는 술을 즐겼다. 부엌 찬장에는 모과주, 매실주, 오디주 등 과일주들이 즐비했고, 냉장고에는 늘 막걸리가 몇 병씩 있었다. 어느 겨울 외할머니는 삶은 오징어에 막걸리 한 병을 상에 담아냈다. 동생이 아마 초등학교 4학년 정도였을 것이다. 숫기 하나 없던 이 녀석은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자기도 술을 마셔보고 싶다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나는 숙제를 하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외할머니는 까짓거 너도 한 잔 하라고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대접 한가득 막걸리를 따랐다. 동생이 연신 꿀떡거리는 소리를 내며 막걸리를 들이켤 때마다 외할머니의 얼굴에 가로주름이 하나 둘씩 번져갔다. 마치 흰 국화꽃이 활짝 피어나는 것 같았다. 오징어 한 접시에 막걸리 두어 대접을 해치운 동생은 결국 거나하게 취해버렸다.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통에 외할머니와 나는 연신 깔깔거리며 그 녀석을 데려다 침대에 눕혀야 했다. 그런데 이 동생이란 것이 침대에 널브러져 한다는 소리는 이랬다.
“야야야야, 뭐야! 나 안 취했어, 안 취했다니깐.”
지금 생각해보면, 술은 자고로 어른들한테 배워야 한다는 말은 순 거짓말이다. 외할머니의 술버릇을 떠올려보면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더욱 확실해진다. 외할머니가 술을 마시는 날은 한 마디로 ‘랜덤’이었다. 어느 날 몇 시에 술을 마실지 우리는 절대 예상할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와 싸운 날처럼 기분이 나쁜 날에도, 아니면 설 연휴가 끝나고 친척들이 모두 돌아간 뒤의 쓸쓸한 날에도, 혹은 미국에 이민 간 막내외삼촌과 긴 통화를 끝낸 기쁜 오후에도 외할머니는 몇 잔씩 꼭 걸치고서야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는 이내 오래된 대중가요 한 자락이 집안에 울려 퍼졌다. 쇳소리가 섞인 저음의 목소리는 막걸리 한 사발에 젖은 채 항상 단 하나의 노래만을 부르고 있었다.
산너울에 두두우우웅실
흘러가는 저 구름아
너는 알리라 내 마음을
부평초 같은 마음을
한 송이 구름꽃을 피우기 위해
떠도는 유랑별처럼
내 마음 별과 같이
저 하늘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아아아리
느리다 못해 질질 늘어지는 그 노래는 외할머니가 코를 골며 잠에 들기 전까지 무한 반복되었다. 그 노래가 들리는 동안만큼은 머리도 가슴도 멍해져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그게 멎을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너무 구슬퍼서 차라리 처참하거나 참혹하다고 말해야만 될 것 같은 소리. 실제로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 노랫소리의 진짜 느낌을 전해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그 노래의 생뚱맞은 실체를 알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할머니이이! 이제 ‘마지막 프러포즈’ 시작한단 말이야. 채널 돌린다? 돌릴게!”
“아이구, 인자 쫌 있으문 현철이 나온단 말여. 그것만 보고 돌리라니께.”
월요일 저녁만 되면 시작되는 채널 싸움이었다. 그 시간 안방 TV는 외할아버지가 뉴스 채널에 고정해둔 채 독점하고 있었고, 작은방은 연애 드라마냐 가요산책이냐를 두고 시끌시끌해지기 마련이었다. 물론 대부분 승자는 우리 자매였다. 하루는 외할머니가 하도 간절하게 부탁을 하는 나머지 우리는 눈을 흘기며 채널을 가요산책으로 돌렸는데, 거기에서 바로 그 노래가 나왔다. 아줌마처럼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파마한 중년 남자가수가 부르고 있는 그 노래, 외할머니가 술만 들어갔다 하면 뽑아내는 그 노래였다. 충격적이었다. 그 노래는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이라는 박자에 맞추어, 산너울에 두, 두우우우웅, 실, 하며 그토록 흥에 겹게 울려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아저씨는 둥글둥글한 얼굴 가득 사람 좋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서는 두 손 두 발을 이용해 적당히 리듬까지 타고 있었다. 흰 양복을 빼입은 풍채 좋은 몸이 둥싯둥싯 하며 이리저리 조명을 반사했다. 어쩌면, 이럴 수가. 그 두 노래가 같은 노래라는 증거라고는 가사가 같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불시에 외할머니는 노래를 시작했다. 돌림노래라고 부르는 게 나을 법한, 적어도 한 마디정도 박자가 쳐져서 질질 끄는, 외할머니만의 구슬픈 ‘내 마음 별과 같이’였다. 외할머니가 부르는 내 마음 별과 같이에서 내 마음이 저 하늘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난다는 부분은 마치 내가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다는 내용 같아서 매우 슬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몰려들 때가 많았다. 여름 밤 더위를 쫓기 위해 몸을 누인 맨바닥에서 불현듯 견딜 수 없는 냉기가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깜깜한 정도를 넘어서 눈이 멀어버린 것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의 깊은 어둠 속에서 나는 내가 조금쯤 죽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허공을 맥없는 눈길로 휘저으며 베개를 치우고 바닥에 머리를 대면, 그때서야말로 진짜 관 속에 누워있는 듯했다. 땅 속으로, 흙 속으로 머리통부터 끝없이 빠져들었고, 저 위로 귀찮은 듯 몇 번 깜빡이고 마는 별 몇 개가 박힌 네모난 하늘, 시커먼 손을 스산하게 흔드는 침엽수들이 보였다. 내 뇌는 이미 썩어 증발했으며, 머리카락이 한 치나 더 자라 해골이 된 내 얼굴 위에 지저분하게 엉켜 있었다. 나는, 엄마의 살과 뼈가 산산이 흩어져버린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모아 끼워 맞추고 관 속에 고이 눕혀 놨댔자 보는 꼴이라고는 이따위 숨 막히는 암흑, 바람 한 점 흐르지 않고 시간마저 사라진 어둠뿐이었을 테니까. 언젠가는 나도 죽는다는 진리에 대한 엄숙한 두려움 때문에 밤만 되면 잠에서 번뜩 깨어 혼자 훌쩍거리던 수많은 날들. 내가 어두컴컴한 거실의 소파 한 구석에 웅크리고서, 마치 이 어둠이 곧 다가올 죽음을 예고하고 있기나 한 듯이 숨죽여 떨고 있자면 외할머니가 조용히 안방에서 나와 내 곁에 앉았다.
"나 죽으면 어떡해, 할머니."
외할머니는 살아오면서 수십 번도, 혹은 수백 번도 더 생각해보았을 그 문제에 대해서 다만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다 죽는거여. 나도 죽고, 너도 죽고. 지금은 무서워도 죽으면 좋은 데 가게 되니께 울지 말어."
나는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싫은 그 말에 더욱 소리 높여 울었다. 그런 식의 대답은 내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너는 죽지 않을 거다 - 라는 말만이 내가 원하는 대답이었지만, 그런 대답을 들을 일은 없을 거라는 것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뭐든, 이미 한 번 포기해놓은 채로 괜한 기대를 했다. 그런 성격이 나를 끝없이 울게 만들고 지치게 만들었다.
이후 나는 우연히 외할머니가 자신의 사후 처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밤에 거실을 지나가다가 문 열린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핀잔하듯 쏴붙인 한 마디가 그 대화의 도입부였다.
"그냥 산에다 하지 무엘 그런 걸 갖고 그랴?"
그러자 외할머니는 평소의 활달한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이 끝날수록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산에다 하면 호랭이가 무서워서 그러지."
"그럼 화장을 하지?"
"화장을 하는 것도 불구뎅이가 무섭구."
‘화장’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에야 나는 그 대화가 무엇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남겨진 육신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두 분은 거론하기도 또는 거론하지 않기도 뭣한 그 주제를 가지고서 좀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화를 나지막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두려움이 새삼 내게도 느껴졌다. 죽음이 정말 모든 것의 끝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 우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외할머니는 늘 우리에게 엄마는 천당으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옥황상제님과 선녀들이 사는 천당에서 엄마는 영원히 죽지 않고 신선처럼 살 거라고. 거긴 이 세상보다 수 천 수 만 배는 더 행복하고 좋은 곳이니까 너희들도 열심히 기도해서 꼭 거길 가야 한다고 사뭇 엄술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우리가 이사 오던 날 이삿짐 속에서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성모마리아상을 꺼내 내다 버렸다. 우리는 옥황상제님의 자녀가 될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불경스러운 것은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외할머니는 그 집에서 죽기 바로 직전까지도 하염없이 상제님을 찾고 또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