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신문은 없다
한 일간신문에 원로 정치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올해 93세에 박사과정에 입학했으며 61세에 시작한 골프가 92세부터 실력이 부쩍 늘기 시작했다는 등 남다른 모습에 감탄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 끊임없이 정진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런데 인터뷰 기사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기자가 쓴 글이다.
눈길이 '영자신문'에 갔다. 영자신문이라... 물론 필자도 어렸을 때 수도 없이 듣던 말이다. 생소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진 말이다. 왜 잘못 만들어진 말인가? '워싱턴포스트'를 영자신문이라 하는데 이 신문만 놓고 보면 잘못된 말이 아니어 보인다. 영어는 영자로 적고 그 영자로 적힌 신문이니 영자신문이라 한 거다. 문제가 없는 듯하다.
그런데 워싱턴포스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프랑스의 유력지 르몽드(le monde)를 놓고 생각해 보자. 르몽드를 뭐라 부를 것인가? 르몽드는 영자신문인가? 영자신문이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해 금방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독일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생각해보자. 유력지 디벨트(Die Welt)는 영자신문인가 아닌가? 아직 답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럼 워싱턴포스트와 르몽드와 디벨트의 차이가 뭔지를 생각해 보자. 우선 공통점부터 떠오를 것이다. 적힌 문자가 같다는 것이다. a, b, c, d, e... 같은 문자를 쓰지 않는가.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들 신문은 같은 문자를 쓰지만 사용된 언어가 다르다. 워싱턴포스트는 영어, 르몽드는 프랑스어, 디벨트는 독일어다. 영어를 모르면 워싱턴포스트를 읽을 수 없고 프랑스어를 모르면 르몽드를 읽어 내지 못한다. 독일어를 모른다면 디벨트의 기사를 이해할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를 별 생각 없이 영자신문이라 하겠지만 그럼 르몽드는 뭐라 부를 것인가? 디벨트는 뭐라 부를 것인가? 르몽드, 디벨트도 영자신문이라 해야 할까? 심지어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덴마크, 헝가리 등의 신문도 다 영자신문이라 하는 것이 옳을까? 죄다 사용된 언어가 다른데 말이다.
르몽드, 디벨트는 영자신문이 아니다. 르몽드는 프랑스어 신문이고 디벨트는 독일어 신문이다. 르몽드를 불자신문, 디벨트를 독자신문이라 할 것인가?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르몽드가 프랑스어 신문, 디벨트가 독일어 신문이라면 이제 워싱턴포스트를 뭐라 불러야 할지가 자명해진다. 워싱턴포스트는 영어 신문이지 영자 신문이 아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신문에 '미망인', '영식', '영애', '각하'라는 말이 늘상 쓰였다. 남편이 죽은 여인을 '미망인'이라 했다. 남편이 죽었는데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이니 이 얼마나 성차별적인 단어인가. 대통령의 아들을 영식, 딸을 영애라 하고 대통령에 대해 각하라는 말을 쓰는 것은 당연했다. 이제 미망인, 영식, 영애, 각하 같은 말은 쓰지 않는다. 잘못된 말인 줄 알기 때문이다. 신문에는 심지어 '범인'이라는 말도 보기 어렵다. '용의자'라고 하지 '범인'은 잘 안 쓴다. '영자신문'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말이므로 퇴출되어야 한다. 기자들부터 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