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는다'라는 말은 없다
민법 제920조의2는 1990년 1월에 신설된 조이다. 그때 민법은 참 많이 바뀌었다. 남녀간의 불평등이나 장자 우대 등의 봉건적 풍습이 시대 변화와 함께 민법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친족 상속에 관한 숱한 제도 변경이 그때 있었는데 너무나 많은 조항이 바뀌고 신설되어서였을까. 실로 어이없는 오류가 들어갔다. 민법 제920조의2는 다음과 같다.
부모가 공등으로 친권을 행사하는 경우 부모 중 어느 한쪽이 부모 공동명의로 자를 대리할 때 다른 쪽의 의사와 다를 때도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상대방이 '악의'인 때, 즉 이를 '알았을' 때에는 효력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법률적인 문제를 논하는 게 아니다. 전혀 다른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러하지 아니한다'라는 표현이 어떠냐는 것이다.
"상대방이 악의인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해야 할 것을 "상대방이 악의인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법률 조문에 '그러하지 아니하다'가 들어 있는데 '그렇지 않다'의 줄임말이다. 오직 민법 제920조의2에만 유일하게 '그러하지 아니한다'가 있다.
'그러하지 아니한다'가 줄면 '그렇지 않는다'가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다'라는 말이 국어에 있나?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단순한 오류다. 이런 오타가 법조문에 들어간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30년이 넘도록 지금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 믿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