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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Oct 18. 2024

맞춤법은 지켜야 한다

두음법칙을 무시하나?

우리나라에 법이 참 많다. 1,700개가 넘는다. 이들 법 중에는 1940~1960년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법이 있는가 하면 2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비교적 새 법도 많다. 국가의 기본이 되는 법일수록 일찍 만들어졌다. 형법이 1953년, 민법이 1958년, 상법이 1962년에 제정되었다. 이런 기본법은 제정 당시에 온통 한자로 적혔다. 한자로 적을 수 없는 순우리말만 한글로 적었다. 한자 혼용이 지배적이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이들 법에 있는 한자는 여전히 그대로다. 오늘날 웬만한 법전에 이들 법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는 것은 독자 편의를 위해 한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일 뿐 법적으로는 엄연히 한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법전 원문의 한자를 편의상 한글로 옮겨 적으면서 한글 맞춤법을 어긴 예가 적지 않다. 특히 상법에 그런 사례가 많다. 예컨대 상법 제96조와 제126조를 보자.


상법

제96조(결약서교부의무) ①당사자간에 계약이 성립된 때에는 중개인은 지체없이 각 당사자의 성명 또는 상호, 계약년월일과 그 요령을 기재한 서면을 작성하여 기명날인 또는 서명한 후 각 당사자에게 교부하여야 한다. <개정 1995. 12. 29.>


제126조(화물명세서) ①송하인은 운송인의 청구에 의하여 화물명세서를 교부하여야 한다. <개정 2007. 8. 3.>

②화물명세서에는 다음의 사항을 기재하고 송하인이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여야 한다. <개정 1995. 12. 29., 2007. 8. 3.>

1. 운송물의 종류, 중량 또는 용적, 포장의 종별, 개수와 기호

2. 도착지

3. 수하인과 운송인의 성명 또는 상호, 영업소 또는 주소

4. 운임과 그 선급 또는 착급의 구별

5. 화물명세서의 작성지와 작성년월일


'계약년월일', '작성년월일'이라 했다. 법전 원문에는 한자로 '契約年月日', '作成年月日'라 되어 있는데 이를 한글로 보여주면서 맞춤법을 지키지 않았다. '계약연월일', '작성연월일'이라야 한다. 왜 이런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 있을까.


요즘 법률은 제정할 때 한글로 작성하기 때문에 원문이 한글인 게 보통이다. 그리고 한글 맞춤법도 잘 지키고 있다. 수많은 법률에서 '년월일'이 아니라 '연월일'이라 바르게 쓰고 있다. 한 예를 들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는 다음과 같이 '연월일'이라 되어 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9조(가족관계등록부의 작성 및 기록사항) ① 가족관계등록부(이하 “등록부”라 한다)는 전산정보처리조직에 의하여 입력ㆍ처리된 가족관계 등록사항(이하 “등록사항”이라 한다)에 관한 전산정보자료를 제10조의 등록기준지에 따라 개인별로 구분하여 작성한다.

② 등록부에는 다음 사항을 기록하여야 한다.  <개정 2010. 5. 4.>

1. 등록기준지

2. 성명ㆍ본ㆍ성별ㆍ출생연월일 및 주민등록번호

3. 출생ㆍ혼인ㆍ사망 등 가족관계의 발생 및 변동에 관한 사항

4. 가족으로 기록할 자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하 “외국인”이라 한다)인 경우에는 성명ㆍ성별ㆍ출생연월일ㆍ국적 및 외국인등록번호(외국인등록을 하지 아니한 외국인의 경우에는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 국내거소신고번호 등을 말한다. 이하 같다)

5. 그 밖에 가족관계에 관한 사항으로서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사항


그렇다면 왜 상법에서는 '년월일'이라 하고 있는가. 더구나 '년월일'은 법적인 근거도 없다. 법에는 한자 '年月日'로 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편의상 한글로 적으면서 실수를 했다. 그러니 법 개정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월일'을 '월일'로 바꾸어 주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그냥 두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이렇게 제공하고 있다. 여간 부주의하고 태만하지 않다. 


더욱 황당한 예가 있다. 상법 제462조의3은 1998년 12월에 신설된 조이다. 당시에 제462조의3 제1항은 다음과 같았다.


第462條의3(中間配當)  1回의 決算期를 정한 會社는 營業年度중 1回에 한하여 理事會의 決議로 일정한 날을 정하여 그날의 株主에 대하여 金錢으로 利益을 配當(이하 이 條에서 “中間配當”이라 한다)할 수 있음을 定款으로 정할 수 있다.


1998년 당시에도 상법 조문을 한자로 적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것은 지금도 여전한데 다만 편의상 한글로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표기하고 있다.


상법

제462조의3(중간배당)  1회의 결산기를 정한 회사는 영업년도중 1회에 한하여 이사회의 결의로 일정한 날을 정하여 그 날의 주주에 대하여 이익을 배당(이하 이 條에서 “中間配當”이라 한다)할 수 있음을 정관으로 정할 수 있다. <개정 2011. 4. 14.>


''을 ''이라 한 것이다. 당연히 틀렸다. ''이라야 한다. 그래야 두음법칙에 맞다. 맞춤법도 사회적 약속인데 왜 이를 무시하나. 법조문이 맞춤법을 어기다니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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