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초 대한항공으로부터 마일리지 유효 기간 안내라는 메일이 왔다. 올 연말까지 쓰지 않으면 얼마가 소멸될 거라는 예고였다. 얼마 후 더 놀라운 소식이 떴다. 중국 정부가 한국을 비자 면제 국가로 포함시켰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아무튼 이 두 가지 일이 나의 상하이 여행에 발동을 걸었다. 비자가 필요 없으니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지 않나. 바로 항공권 구매에 나섰다. 완전 무료는 아니었다. 유류할증료니 뭐니 해서 8만 얼마를 지불하고 12월 12일 상하이로 출국해서 15일 돌아오는 항공권을 샀다.
그리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여행은 실제로 가서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재미 또한 작지 않다. 뭐가 필요한지를 유튜브를 통해서 익혀 나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틈만 나면 인터넷에서 지도를 펼쳐 상하이 지리를 공부했다. 과거에 중국에 여러 차례 간 적이 있다. 처음 간 것은 1995년이었다. 마지막으로 간 것은 2016년에 윈난성의 옥룡설산에 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졌다고 유튜버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우선 현금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어찌 큰 변화가 아닌가. 그래서 스마트폰에 알리페이(支付宝)를 깔았다. 그리고 내 신용카드를 연결시켰다. 지도도 깔았다. 바이두지도와 가오더지도를 다운받았다.
날짜가 차츰차츰 다가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숙소 예약을 미룰 수 없겠다 싶었을 때 숙소를 결정했다. 처음엔 매일 다른 곳에서 묵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 계획은 접고 3박을 모두 한 곳에서 묵기로 했다. 트립닷컴, 호텔스닷컴, 아고다 등을 열어 교차 검색을 해보고 결국 시내 중심부에서 조금 남쪽에 있는 Magnificent International Hotel(华美国际饭店)로 낙점했다. 지불을 전액 미리 해야 했다. 혹시 몰라 WeChat페이를 위한 앱도 깔았다. 그리고 인터넷 사용을 해야 해 이심(esim)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맛집이며 갖가지 온갖 정보를 알려준다는 Dianping 앱도 깔아 두었다. 얼추 준비를 마쳤다.
아침 8시 20분 비행기다. 그 시간에 맞추기 위해 집 부근에서 새벽 첫 공항버스를 탔다. 타보니 놀랍다. 빈자리가 몇 개 남지 않았다. 광명역에 이르니 길을 줄게 서 있었는데 앞의 몇 사람은 탈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버스는 제3경인고속도로를 맹렬히 달려 불과 40여 분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대부분 제1터미널에서 내렸고 제2터미널에서 내린 사람은 몇 사람뿐이었다.
수속을 밟기 전 편의점에서 어댑터를 샀다. 8천 원이었다. 아마 분명 쓰일 데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샀는데 가보니 과연 그랬다. 드디어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보안검색을 기다리는 줄은 이만저만 길지 않았다. 10여 분 뒤 드디어 차례가 되었는데 벨트까지 풀라 했다. 그런 엄한 절차를 거친 뒤 맞은 출국심사는 의외로 간단했다. 사람이 심사하는 게 아니라 기계가 했으니 말이다. 여권을 스캔하고 손바닥이며 손가락으로 지문 채취를 하는 걸로 끝이었다. 이제 보딩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드디어 탑승이 시작됐고 미리 폰으로 예약해둔 창가 좌석에 앉으니 바깥이 잘 보였다. 날개 부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떴다. 영종도가 순식간에 자그맣게 보였다. 이어서 영흥도인 듯싶은 섬도 까마득히 내려다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으니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더 이상 땅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가 나왔다. 깨끗이 비웠다.
비행 시간은 1시간 40분이다. 이리 중국이 가까울 줄이야! 비행기는 서서히 하강했고 바다가 아니라 육지가 보였다. 착륙이 가까워졌다. 사뿐히 내렸다. 그리고 푸둥국제공항 터미널 앞에는 중국 비행기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중국에 왔음을 실감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긴 복도를 따라 걷다가 처음 맞닥뜨린 곳이 지문채취하는 곳이었다. 맞다. 지문을 채취해야 한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중국인은 필요 없지만 외국인은 해야 한다. 기계 앞에 서서 눈치껏 시키는 대로 손바닥, 손가락을 대니 완료됐다는 표시와 함께 쪽지가 나왔다. 그걸 들고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비행기에서 미리 써두었던 입국신고서, 그리고 지문채취 완료 쪽지를 여권과 함께 냈는데 아무 말이 없이 여권을 내주었다. 통과된 것이다. 왜 왔느냐, 무엇 하러 왔느냐, 며칠 있을 거냐 따위를 묻지 않았던 것이다. 묻는다 한들 의사소통이 되겠는가. 그녀는 한국말을 모를 것이고 나는 중국말을 못하는데......
찾을 짐이 없으니 이제 시내로 들어갈 일만 남았다. 지하철, 자기부상열차(Maglev), 버스, 택시 등의 방법이 있었지만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표시를 따라 자기부상열차 타는 곳으로 갔다. 매표소가 있었고 사람이 앉아 있었다. 또한 그 옆에는 표를 살 수 있는 기계도 있었다. 나는 매표소 직원에게 표를 달라 했다. 직원은 비행기를 타고 왔느냐고 묻는 듯했다. 그렇다고 하며 폰에서 항공권을 보여주었다. 물은 이유는 요금을 할인해 주기 위해서였다. 요금이 50위안인데 항공권을 보여주니 40위안이었다. 잠시 기다리니 20분마다 한 대 있는 자기부상열차를 탈 수 있는 통행문이 열렸고 곧 열차가 들어왔다. 역은 단 한 정거장이다. 푸둥공항에서 용양루역까지 중간에 서는 역 없이 8분 만에 주파한다. 빈자리에 앉으면 됐고 좌석번호는 없었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300km, 301km를 왔다갔다 하며 맹렬히 달렸다. 한국의 KTX와 비슷한 속도이건만 왜 이렇게 빠른 느낌일까. 바퀴가 없이 달리니 불안해진 걸까. 지상으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에서 저 멀리 상하이타워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열차는 과연 8분 만에 용양루역에 도착했다.
용양루역은 서울로 치면 청량리역쯤 되는 곳에 위치한다. 시내 중심부로 들어가려면 지하철을 갈아타야 한다. 루자쭈이나 인민광장역으로 가는 지하철은 2호선이다. 2호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알리페이 앱을 켰다. 세 번째 표시가 Transport(교통)인데 이걸 켜면 버스, 지하철, 택시를 다 탈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작동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급당황했다. 왜 안 되지? 왜 안 되는 거지? 역무원에게 내 폰을 건네주며 안 된다 하니 몇 번 해보고는 내게 돌려주는 것이었다. 자기도 모르겠다는 뜻 같았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뭐가 문제인가. 왜 안 되는가. 지하철을 못 타면 꼼짝도 못하는데 이게 왜 안 되나.
폰에서는 계속 등록을 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내국인은 주민번호 같은 걸 넣고 외국인은 여권번호를 넣으라 했다. 그래서 여권번호를 넣었다. 이름과 전화번호도 물론 넣었다. 그런데 안 되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왜 등록이 안 되나. 뭐가 문제가 있나. 그러기를 여러 차례, 이름이 빨강색인 게 눈에 들어왔다. 아! 이름에 무슨 문제가 있구나. 계속해서 Kim Sejung을 넣어서 안 됐는데 Sejung Kim으로 넣어서 해보니 되는 게 아닌가! 몇 차례나 등록이 안 된 이유가 성과 이름의 순서가 잘못돼서였음을 깨달았다. 드디어 문제가 해결됐다.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쓸어내렸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알리페이 만들 때 넣었던 이름과 다르게 입력하니 안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어찌 알았나. 아무튼 낭패감을 수습하고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룽양루역에서 2호선을 타기로 했다. 이제 상하이에서 지하철을 처음 탄다. 그런데 이미 듣던 대로 X-레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가방을 검색대 위에 올려 놓아야 했다. 그리고 개찰구가 나타났다. 알리페이 앱을 켜서 교통을 눌러 기계에 대니 통과하라는 중국어가 떴다. 무사히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먼저 상하이 최대 금융중심지이며 마천루가 모여 있는 루자쭈이(陆家嘴)로 향했다. 룽양루역에서 다섯 정거장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출구가 참 많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도 없고. 아무데로 나가기로 했다. 우선 밖을 봐야 하겠다 싶었다. 과연 나가 보니 어마어마한 고층빌딩이 삐죽삐죽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 유명한 동방명주도 눈앞에 나타났다. 상하이에 오긴 왔구나.
다행히 기나긴 공중 보도가 있어서 그 길을 걸으며 경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거품기, 병따개, 주사기 같은 빌딩이 멀지 않은 곳에 솟아 있었다. 거품기는 상하이에서 제일 높은 건물로 무려 129층이나 되며 높이는 638미터란다. 아랍에미리트의 부르즈할리파, 말레이시아의 메르데카118에 이어 세계 3위다. 거품기는 별명일 뿐 상하이타워라 한다. 병따개는 모양이 병따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별명으로 상하이국제금융센터이고 주사기는 마치 주사기처럼 생겼는데 진마오타워다.
벌써 배터리가 많이 소진돼 충전을 해야겠다 싶었다. 마침 점심 때였고 식사를 하며 충전을 해야겠다 싶어 루자쭈이역 가까이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 때라 여간 붐비지 않았다. 자리를 잡아 면 요리를 하나 시켰고 충전을 해야겠다고 직원에게 얘기하니 빈 콘센트를 안내해 주었다. 상하이에 도착해서 처음 하는 식사였다. 계산은 알리페이로 했다. 충전이 얼마나 됐나 싶어 꺼내 보니 생각만큼 많이 되지 않아 실망했다. 루자쭈이는 다시 또 와보기로 하고 지하철을 타고 시내 한복판으로 갔다. 두 정거장 다음인 인민광장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나오니 바로 인민공원 입구가 나타났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참 깨끗했다. 평지에 꽃을 가득 심어 놓았으며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잠시 뒤 나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웬 남자가 용변을 보고 있지 뭔가. 옆에 휠체어가 있는 걸 보니 몸이 불편한가 보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공원에서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