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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법률

벌집을 잘못 건드렸다

by 김세중

일요일 2호선 전철에 탈선 사고가 일어났다. 신도림역에서 낭패를 당한 나는 서초역으로 가기 위해 노량진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고 고속터미널에서 내렸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고터 버스정류장에서 뜻밖의 사람과 마주쳤다. 초등 동창인데 10년 만의 만남이었다. 마침 그녀도 전철 고장으로 버스 타러 그곳에 왔다고 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그녀는 예전처럼 지금도 사랑의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교회에 가는 참이었다. 낮에 그런 일이 있었고 저녁에 나는 오랜만에 사랑의교회에 가보았다. 벽에 붙어 있는 로마서 성경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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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가 여간 걸리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그로는 뒤에 나오는 어떤 말과 호응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호응할 말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그를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나 "이는 그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였다면 금세 무슨 뜻인지 이해됐을 텐데 왜 그로라고 했을까.


집에 돌아와 밴드에다 글을 썼다. 글의 요지는 성경과 법률은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종종 들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법률에는 '~ 위반하여', '~ 위배하여', '~ 좇아' 같은 표현이 참 많이 들어 있다. 이는 다 국어문법에 어긋나는 표현이다. 그런데도 법률에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법률 조문이 문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법률 조문이 그러한데 성경 로마서의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를이나 그가여야 하는데 그로라 했으니 말이다.


이런 공통점은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성경이나 법률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복종, 순종의 마음으로 읽는다. '대등한' 입장에서 '의문'을 품어가며 읽지 않는다. 성경이나 법률을 무오류라고 믿고 읽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랜 세월 변치 않고 그런 표현이 유지되어 오지 않았겠나. 이런 내용을 글로 써서 몇 밴드에 올렸다.


다른 밴드에선 무반응이었는데 한 밴드에서 뜻밖의 반응을 접했다. 누님 세 분과 필자가 함께 하는 형제 밴드였다. 누님들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나만 아니다. 한 누님이 이렇게 말했다. "'그로' 다음에 '하여금'이 생략이 돼 있는 거인데..."라고 말이다. 아차 싶었다. 벌집을 잘못 건드렸다. 무조건 믿는 마음을 지닌 분에게는 '오류'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그로는 틀린 게 아니며 하여금이 생략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여금은 왜 생략해도 되나. 오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얼마든 감쌀 이유가 생기는 법이다.


성경 이야기는 여기까지!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법률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믿는 사람 사이의 언어이다. 거기에 신자 아닌 이가 문법을 들이미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다. 그러나 법률은 성경과 다르다. 종교와 상관없이 사람인 이상 누구나 읽는 것이고 국민이라면 읽고 쉽게 이해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법조문은 문법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도 문법을 지키지 않은 법조문이 적지 않다. 수두룩하다. 법률은 성경이 아니다. 무오류의 영역이 아니다. 법조문의 오류는 마땅히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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