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문은 흠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헌법은 국회에 예산안을 심의할 권한을 주고 있다. 정부는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삭감은 국회 뜻대로 할 수 있으나 증액할 때는 정부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고 있다. 만일 증액을 국회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면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가 곤란해질 수 있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사업을 위한 선심성 예산이 마구 반영될 경우 정부의 재정 운용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헌법 제57조는 국회가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경우에는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57조는 다음과 같다.
그런데 제57조에서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는 말이 틀렸다. ‘증가하다’는 타동사가 아니다. 자동사다. 자동사는 목적어를 가질 수 없다. 그런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에서 ‘금액을’은 ‘증가하거나’의 목적어이다. ‘증가하거나’를 써서는 안 되고 ‘늘리거나’ 또는 ‘증액하거나’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금액을 늘리거나’는 자연스럽지만 ‘금액을 증액하거나’는 ‘액’이 연거푸 나와서 중복의 느낌이 있다. 그럼 ‘금액을 증가시키거나’라고 해도 된다. 요컨대 ‘금액을 늘리거나’, ‘금액을 증액하거나’, ‘금액을 증가시키거나’는 말이 되지만 ‘금액을 증가하거나’는 말 자체가 틀렸다. 사람들은 보통 ‘금액’, ‘증가’만 보고 전체 조문의 뜻을 파악하기 때문에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가 틀린 말인 줄 미처 잘 깨닫지 못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잘못된 말임을 알 수 있다. 헌법 제57조에서처럼 ‘증가하다’를 잘못 쓴 사례가 형사소송법에도 있다. 형사소송법 제298조 제4항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의 불이익을 증가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에서 ‘불이익을 증가할’은 틀린 표현이다. ‘피고인의 불이익을 더 크게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이라고 하든지 ‘피고인의 불이익이 더 커질 염려가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이라고 할 때 바른 표현이 된다. ‘증가하다’를 잘못 쓴 사례는 상법에도 있다. 상법 제523조는 다음과 같다.
‘주식의 총수를 증가하는 때에는’은 ‘주식의 총수를 늘리는 때에는’이나 ‘주식의 총수를 증가시키는 때에는’이라야 한다. 형사소송법, 상법에 나오는 ‘증가할’, ‘증가하는’은 헌법 제57조의 ‘증가하는’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모두 ‘증가하다’를 잘못 쓰고 있다. 헌법에 '금액을 증가하거나'가 나오니 하위 법인 형사소송법, 상법 등 법률에서도 이를 따라 '증가하다'를 타동사로 쓴 것인데 분명 잘못되었다.
현행 헌법은 1987년에 개정되어 지금에 이른다. 40년이 되어 간다. 벌써 오래전부터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개정 의지를 보이고 있어 머지않아 헌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때 헌법 제57조의 ‘증가하거나’를 ‘늘리거나’로 바꾸어야 한다. 또한, 형사소송법, 상법도 개정해야 한다. 이들 법에 잘못 쓰인 ‘증가할’, ‘증가하는’도 문맥에 맞게 다른 말로 바꾸어야 한다.
헌법에는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분명히 문법에 어긋나는 표현이 있다. 헌법 제107조 제1항과 제2항에 나오는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가 그것이다.
‘여부’라는 말은 ‘그러함과 그러하지 아니함’이라는 뜻이다. ‘사실 여부’, ‘합격 여부’, ‘당선 여부’ 등과 같이 쓰인다. 또 ‘사실인지 여부’, ‘참가하는지 여부’, ‘합격했는지 여부’ 등과 같이 쓰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ㄴ지 여부’, ‘는지 여부’ 등과 같이 쓰이지 ‘ㄴ여부’, ‘는 여부’와 같이 쓰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예쁜지 여부’라고 하지 ‘예쁜 여부’라고 하지 않는다. ‘참석하는지 여부’라고 하지 ‘참석하는 여부’라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라야지 ‘위반되는 여부’는 말이 되지 않는다. 문법에 맞지 않다. 그런데 문법에 어긋나는 ‘위반되는 여부’가 1948년 대한민국헌법 제정 때부터 쓰였다. 제헌헌법의 제81조는 다음과 같았다.
제헌헌법에 한번 들어간 '~에 위반되는 여부'는 지난 세월 아홉 차례 헌법이 개정되는 동안 한 번도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그대로다. 헌법이 갖는 무게감 때문에 누구도 그 말이 틀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틀린 건 틀린 거다.
상법에도 분명 틀렸지만 잘 모르고 넘어가기 쉬운 표현이 있다. 상법 제393조 제3항은 다음과 같다.
이사가 대표이사에게 어떤 내용에 대해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뜻은 그러한데 표현이 뭔가 잘못되었다. ‘하여금’이라는 말이 쓰였는데 ‘하여금’은 ‘~로 하여금 ~게 하다’ 또는 ‘~로 하여금 ~도록 하다’ 꼴로 쓰이는 말이다. “그 말이 나로 하여금 화가 나게 하였다.”나 “선생님은 학생들로 하여금 청소를 하게 했다.”와 같이 말한다. 그런데 상법 제393조 제3항의 “이사는 대표이사로 하여금 다른 이사 또는 피용자의 업무에 관하여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에서는 ‘하여금’이 쓰였지만 ‘~게 하다’나 ‘~도록 하다’가 보이지 않는다. ‘보고하게 할 수 있다’라고 해야 하는데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라고 했다. 애초에 ‘하여금’을 쓸 자리가 아니었다. ‘대표이사로 하여금’이 아니라 ‘대표이사에게’라고 해야 옳았다. 즉 “이사는 대표이사에게 다른 이사 또는 피용자의 업무에 관하여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라고 할 때 아무 문제가 없다.
법조문은 조금도 흠이 없어야 하는데 위에서 본 조문들은 분명히 흠이 있다. 무슨 뜻인지 감은 잡을 수 있어 보이나 바른 문장이 아니다. 흠이 있는 문장은 뭔가 이상하니 되풀이해서 읽게 만든다. 법조문이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런 잘못된 조문은 바로잡아야 한다. 법을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