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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법의 말은 바로잡아야

국민의 알 권리를 찾아야 한다

by 김세중

아마도 독자들은 우리나라의 기본 6법에 이렇게 많은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고 충격마저 받았을 것이다. 그럼 왜 이런 엄청난 오류가 70년 가까이 방치되어 왔을까. 가장 큰 이유는 6법이 법조인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만 이해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법조인들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 6법을 공부하면서 법조문의 뜻과 제정 취지를 이해했다. 그래서 법조문에 오자가 있건 말건, 문장이 한국어 문법에 맞건 맞지 않건 법조문의 뜻과 취지만 이해하만 그만이었다. 일반 국민이 법조문을 이해할 수 있는지는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일단 문법에 맞아야 법조문을 이해할 수 있는데 문법에 맞지 않으니 일반 국민이 법조문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난공불락과 같았다. 말하자면 6법 조문의 각종 오류는 일반 국민에게 6법에 대한 접근 금지를 한 셈이었다. 그 결과 6법은 국민에게서 멀어졌고 6법은 법조인들만 보는 것으로 굳어졌다. 국민이 법을 알아야 법을 지킬 수 있는데도 말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법제처가 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통해 법을 국민이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웬만한 법률은 국민이 읽고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법률의 한글 전용도 거의 실현되었다. 법제처의 법령 정비 사업이 거둔 결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제처가 아직 바꾸지 못한 법률이 있으니 기본법이다.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이 마치 성역처럼 제정 때 모습 그대로이다. 일본 법을 번역하면서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게 번역된 문장이 그대로 있어서 독해를 가로막고 있다. 문자도 한자 그대로이다. 편의상 한글로 바꾸어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법제처는 기본법을 알기 쉽게 바로 쓰는 작업도 추진하여 정비안을 법무부에 송부했지만 진척을 보지 못했다. 2015년과 2019년에 법무부가 법제처와 협업하여 국회에 제출한 민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국회에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것은 민법 개정에 반대하는 법조계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한몫했다. 법조계는 법체계의 안정성을 들어 기본법 개정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법률 용어를 바꾸는 것은 법체계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겠지만 단순히 오자를 고치거나 문법에 맞지 않는 조문을 문법에 맞게 바꾸는 것은 법체계 안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무조건 고쳐야 한다. 그런데 6법에는 오자나 문법에 맞지 않는 조문, 일본어 오역이 너무나 많다.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는 일은 이미 진작에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었다. 이런 문제가 바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이 법조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법을 알 권리를 방해받아 왔다.


대한민국은 지난 70여 년간 실로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광복 당시에는 인구의 80% 가까이가 문맹이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 진학률을 보이는 나라가 됐다. 노년층에서 일부 있을까 문맹자는 이제 없다. 6.25 전란으로 나라는 폐허가 되다시피했는데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에 올라섰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말할 나위가 없다. 초연결사회가 되었다. 한류가 전세계로 퍼져나가기에 이르렀다. 문화강국으로 우뚝 섰다. 이렇게 도무지 변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나라가 환골탈태했다. 국민의 높은 교육열이 바탕이 돼 얻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1950년대 상태 그대로인 것이 6법이다. 나라의 기본이요 토대를 이루는 6법은 2002년에 개정된 민사소송법을 제외하고 제정 때 그대로다. 제정 당시 일본 법을 번역하다시피 해서 우리 법을 만들었는데 국어에 서툰 당시 법률가들이 잘못 만든 국어 문장이 지금도 6법의 조문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낡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왜 사회의 온갖 분야에서 실로 놀라운 현대화를 이루었는데 6법의 조문만 이렇게 낡고 오류투성이인 채 그대로인가. 그 결과 국민은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지만 그 국민이 6법에 접근하기 어렵다. 6법도 달라지 않으면 안 된다.


6법이 1950년대 그대로의 낡은 상태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가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무엇보다 정상적인 한국어 문장이 아니어서 읽어도 무슨 뜻인지 좀체 이해하지 못한다. 법은 국민이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국민이 읽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법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지금 6법은 오로지 법조인만을 위한 것이고 일반 국민의 접근을 막고 있다. 민법 제2조 제1항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가 대체 무슨 뜻인가. ‘신의에 좇아’가 정상적인 한국어인가. 국민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가. 형법 제136조 제2항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 그 직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에서 ‘조지하거나’는 무슨 뜻인가. ‘저지하거나’의 잘못 아닌가.


법조문이 이렇게 돼 있지만 법조인들은 ‘신의에 좇아’를 ‘신의를 지켜’로 이해하고 있고 ‘조지하거나’는 ‘저지하거나’로 이해해서 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이들 법조문을 읽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이런 조문이 한둘이 아니고 부지기수이다. 우리나라 6법은 법조인들만을 위한 법이고 일반 국민은 무시하고 있다. 법은 법률 전문가들만 알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국민은 무시당하고 있다. 이게 오늘날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국민주권 시대에 타당한가. 그렇지 않다. 법은 국민이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일반 국민만 무시당하고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니다. 법조인이 되고자 법을 공부하는 로스쿨 학생들도 고충을 겪고 있다. 한 예를 들면 2018년 9월 19일 법조신문에 당시 로스쿨생이던 배지성 씨(현 변호사)는 “법전을 보면 난해한 한자어를 바꿔야 한다거나 문장 정리가 필요한 조문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로스쿨생이 보기에도 법전에는 문장 정리가 필요한 조문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의 생각이 아니라 모든 로스쿨생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일 것이다. 문장 정리가 무엇인가. 법조문의 문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말 아닌가. 표현이 점잖게 ‘문장 정리가 필요한’이지 말이 안 되는 문장이라는 얘기다.


로스쿨 학생들만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저명한 민법학자 송덕수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2024년 3월 5일 국민일보에 쓴 ‘민법을 알기 쉽게 고쳐야 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국민이 법을 어려움 없이 읽고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국민을 생각할 때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라고 갈파했다. 핵심을 찔렀다. 형사법 전공의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영 교수는 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어려운 법문을 고치지 않는 것은 법률가의 갑질이고 한글 창제에 깃든 애민정신을 본받아 쉬운 소통이 가능한 법조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탁견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뜻있는 법학자들의 주장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두터운 기득권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왜 정부와 국회는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필자는 법대에 다닐 때 법조문이 이상하게 느껴져 고심했다는 어떤 사람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법조문이 정말 잘못된 건지, 법조문이 이상하다고 느낀 자신이 잘못인지 혼자 끙끙 앓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쓴 ‘민법의 비문’을 읽고서야 비로소 법조문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던 자신이 옳았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오늘날 6법에 남아 있는 숱한 비정상적인 문장들은 일반 국민의 법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지만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1950년대에 잘못 만들어진 법조문이 2020년대에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 왜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나. 법조문이 반듯하고 바르다면 단번에 간파할 수 있는 것을 문장이 잘못돼 두 번, 세 번 되풀이해서 읽게 만든다면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되풀이해서 읽고 이해라도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아리송하게 느껴진다면 그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적, 경제적 낭비는 계산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다.


광복 80년이 지났다. 일본 식민시대의 잔재는 오늘날 거의 씻어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가려내 이들이 부당하게 취득한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켰다.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도 극복했다. 그리고 우리 생활에 녹아들었던 많은 일본어를 우리말로 바꾸었다.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것은 그 한 예다. 20년만 더 지나면 광복 100년을 맞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라를 지탱하는 기본법인 6법의 언어에는 일본 법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본 법조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잘못 번역한 조문이 너무나 많다.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법조계는 변화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일부 양식 있는 법조인들이 이를 바로잡고자 해도 다수의 법조인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고수하기만을 바란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적어도 6법만큼은 일본 식민시대의 잔재가 굳건히 남아 있다. 이제 바뀔 때도 됐다. 아니, 진작에 바뀌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부끄러운 일본어 단어, 일본어 오역을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 2006년 법제처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법률 한글화와 법령 용어 정비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법령을 만들기 위해 법제처가 노력을 기울인 보람이 있어 오늘날 대부분의 법률은 한글화가 되어 있다. 한자가 한글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 기본법만은 요지부동이다. 법제처와 법무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 법만은 바꾸지 못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모습 그대로다. 왜 바뀌지 않고 있나. 보수적인 법률가 사회의 변화 거부 때문이기도 하지만 입법권자인 국회의원들의 무관심이 또한 큰 문제이다. 국회의원들은 입법권을 가지고 있어 숱한 법률 제정, 개정안을 내지만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 기본법의 현대화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무관심하다. 이는 우리 사회의 그 어떤 이해집단도 기본법 현대화를 요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이 기본법 바로세우기에 무관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은 온 국민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법률들로 이들 법에 들어 있는 온갖 오류들은 국민이 기본법을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결국 국민이 깨어나는 수밖에 없다. 국민이 낡고 오류투성이인 기본법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기본법 현대화를 요구하는 범국민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눈앞의 정쟁에 함몰돼 국민의 기본적 알 권리 요구에 무관심한 국회의원들을 일깨울 수 있다. 국회는 이미 제19대 국회와 제20대 국회에 제출되었던 민법개정안을 폐기시킨 바가 있다. 그 법이 통과되었더라면 기본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민법이 국민이 알기 쉽게 개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제처와 법무부가 협업해서 만들어진 민법개정안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제21대 국회에서는 개정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 제22대 국회에서도 역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6법 중에서 오직 민사소송법만 2002년에 전부개정되면서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사용된 법률용어들이 국민에게 낯설기는 해도 문장만큼은 잘 다듬어졌다. 국민이 어려움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은 1950년대와 1960년대초 상태 그대로이고 도저히 한국어 문장이라고 하기 어려운 문장이 숱하다.


법은 법률가들만 알면 되는가. 국민은 법을 몰라도 되나. 법은 국민이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법을 읽어도 무슨 말인 줄 모르게 돼 있는데 국민이 어떻게 법을 지키나. 국민은 법을 읽고 이해할 권리가 있다. 법의 문장은 국민이 알기 쉽게 씌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법은 국민을 위한 법이 아니다. 법률가 집단만을 위한 법이다. 국민은 법을 알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찾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법 문장 개선 요구가 들불처럼 번져 법이 국민이 알기 쉽게 바뀌어야 한다. 일제 식민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6법의 문장을 고쳐 써야 한다. 더 이상 부끄러운 법 문장을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줄 수는 없다. 당장 지금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도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 대한민국의 기본법은 알기 쉽게 바뀌어야 한다. 국민이 떨쳐 일어나 국민의 알 권리를 찾아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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