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 도넛가게의 이상한 브랜딩

by 손지혜

어느 날 우리 동네에 촌스런 간판이 걸렸다.


"호머스?"


누가 봐도 호머 심슨이 사랑하는 도넛, 핑크색 글레이즈에 알록달록 스프링클이 뿌려진 그 도넛이 메인인 가게가 열렸다. 장난 같은 그 이름이 과연 얼마나 갈까 했는데 어느새 몬트리올 이곳저곳에 지점을 열더니 토론토로 진출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 또 가봐 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 당뇨 전단계인 내가 다이어트해야 하는 큰아이까지 데리고 도넛가게에 들어갔다. 줄이 제법 길었다.


미국의 사전 출판업체 미리엠 웹스터는 2019년에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을 사전에 올렸다.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매력이 있다는 뜻이라고 보면 되는데, 호머스의 도넛은 인스타그램으로 바이럴을 타기 딱 좋은 아이템이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이름, 요란한 장식. 맛도 꽤 괜찮았던 데다 가격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기본 도넛은 한 개 캐나다 달러로 $2.25, 크고 예쁜 프리미엄 제품은 $3.5니까 바게트 하나값도 안되었다. 그런데 호머스 도넛이 특이한 것은 현란한 모양만이 아니다. 이제껏 어디서도 보지 못한 마케팅이 도넛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몬트리올의 자부심은 베이글인데


몬트리올이라면 누가 뭐래도 베이글이지. 24시간 따뜻하고 쫄깃하고 고소한 베이글을 사 먹을 수 있는 베이글의 성지 몬트리올에서 몸에도 나쁜 도넛이 웬 말인가. 하다 못해 몬트리올은 프렌치 캐네디안이 뿌리를 내린 도시니까 바게트... 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도넛이라니. 여기가 미국 스프링필드도 아닌데. 하지만 호머스 도넛은 팀호튼이 대표하는 (던킨 도넛은 이미 오래전에 문 닫아서) 대중적인 도넛시장과 베뉴아비튀드(Beigne Habitude) 같은 퀘벡의 수제 도넛시장 사이를 과감하게 치고 들어가 불과 1-2년 사이에 매장을 7개로 늘려버렸다.


매장은 밖에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안에도 꽤나 요란했다. 그중에 눈길을 끈 것이 있었으니 게임기들이다.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기들이 가게의 키치 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1980년대를 향하는 노스탤지어였다. 이건 그 시대를 관통해 온 X세대의 지갑을 여는 동시에 Z세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마케팅 전략으로 요즘 꽤 많은 부문에서 볼 수 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심슨스가 가장 핫했던 1990년 전후를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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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드레스


호머 심슨이 즐겨 먹는 핑크색 도넛에는 물론 호머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저작권 따위 알바 아니라는 듯, 쿠키 몬스터와 엘모 도넛도 당당하게 놓여 있고 심지어 가게 이름 호머스는 살짝 오렌지가 들어간 노란색 글씨로 쓰여 있다. 심슨스 타이틀의 노란색처럼. 폰트는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호머와 호머스는 다르다고 주장할까? 하지만 완전히 카피하지 않아도 소비자로 하여금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경우 법적분쟁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호머 심슨의 얼굴만 없을 뿐, 누가 봐도 심슨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상품이고 브랜드다. 어쩌면 이제까지는 동네 도넛가게였으니까 문제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토론토로, 캐나다 전국으로 커진다면? 그럼 당연한 수순으로 디즈니로부터 소송당하지 않을까? 심슨스는 2019년 21세기 폭스사가 합병당하면서 디즈니에게 판권이 넘어갔다. 그렇다. 저작권 문제라면 유치원 장식까지도 소송 건다는 악명 높은 디즈니를 상대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동안 심슨스처럼 보여서 홍보효과를 노렸던 모든 일들이 이제 회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 셈이다. 해리 포터 등 각종 캐릭터랑 종종 콜라보를 하는 크리스피 크림도 괜히 돈을 내는 건 아니니까, 결국 호머스는 어떻게 될까? 대충 시나리오를 적어보면,


1. 이름과 인테리어를 바꾼다.

레트로한 이미지는 그대로 가져가더라도 가게와 호머스 도넛 이름을 바꿔 폭탄을 피한다.

2. 디즈니의 러브콜을 받는다.

아예 협업해서 심슨스 공식 도넛가게로 거듭난다. 아마 확률은 적겠지만.


뭐가 됐든, 몬트리올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 독특한 도넛가게가 맛으로 승부하면서 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