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알못의 대량생산
귀차니즘에게 요리란
10년 넘게 자취하면서 귀차니즘과 '대충대충'을 인생 모토로 살아온 내게 식사는 그저 배고픔을 해결해야 하는 수고스러운 일에 불과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지만 고구마로도 충분히 한 끼 해결이 가능한 인간이라서 저녁 식사는 늘 배달, 밀키트, 편의점 음식 등으로 해결하곤 했다.
비슷한 부류인 동거인 친구와 재활용 배출날이면 지구 오염의 주범임을 자각하며 죄책감에 휩싸였었는데..
저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태울 바엔 무한 생산자인 우리를 태우는 게 낫다는 말을 종종 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오래 간편한 식사만 고수해 오던 내 식습관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식사를 고민하게 되는 날이 왔다.
예비 신혼부부가 되면서 자연스레 결혼식 전에 집을 먼저 합치게 되자 예상치 못한 고민거리가 생겼는데..
그건 바로 매일 아침과 저녁이면 찾아오는 식사시간이다.
실은 다가올 결혼식에 대비해 6개월 전부터 다이어트를 핑계로 배달음식이나 외식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대신 냉동 다이어트 도시락으로 한 끼 때우기를 시전하고 있었다.
전자레인지 해동에 3~4분, 먹는 데 걸리는 시간 20분, 총 30분이 걸리지 않는 간편식의 끝이다.
그런데 막상 친구가 아닌 예비 남편과 함께 살게 되니 앞으로 쭈욱 다이어트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삶은 좀 아니지 않을까라는 내면의 알 수 없는 심리가 생겨났다.(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면서..)
막무가내로 대충대충 살아가는 것은 혼자 살 때로 충분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어찌 되었든 성격만 급한 왕초보 요리사인 난 동거한 첫 주말에 예비 신랑을 끌고 무작정 마트로 향했다.
그리곤 무계획적으로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좋다는 야채, 식재료등을 몽땅 쓸어 담아왔다.
재료를 먼저 사고 난 뒤 요리를 끼워 넣으려니 영 쉽지 않았으나 다행히도 유튜브와 네이버엔 만능 요리사님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중이다.
띠링! 맛은 없지만 양이 많은 요리 나왔습니다.
애초에 모양새 좋은 요리를 원하지 않는 나란 인간에게 요리는 '시간 싸움'일뿐이었다.
충분히 느긋하게 준비해도 되는데 빠르게 빠르게를 외치며 숭덩숭덩 썰어내는 재료들은 자가증식한다.
둘이서 먹을 적당한 '두 그릇만' 만들어낼 계획이었지만 다 만들고 나면 '연회장 요리'가 되어버리고 만다.
손은 어찌나 큰지 있는 재료 없는 재료를 다 꺼내 몽땅 썰어내니 대량 생산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요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삐죽 빼죽 못생긴 음식이 나왔지만 착한 예비 신랑은 아직까지는 꾸역꾸역 웃으며 잘 먹는다. 원래 기름진 음식만 좋아하는 그지만 결혼식 다이어트를 위해 특단의 조치로 내가 만들어내는 이상한 다이어트식(?)을 먹는 수련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서
어릴 때 엄마와 장을 보러 큰 마트를 가면 우리 가족은 카트를 2개씩 끌고 다녔다.
식성 좋은 삼 남매를 키워내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욕심이 많은 엄마는 늘 '혹시 모른다'를 외치며 1개 사야 할 품목에서 2~3개 더해 쟁여 놓곤 했었다.
그래서 난 당연히 다른 집도 장을 볼 땐 카트 2개를 끌고 다니는 것이 기본인 줄 알았었다.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쏙 빼닮아 성장한 나는 요리도 잘 알지 못하면서, 아니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각종 재료들을 카트에 한가득 한가득 담고 있다.
"저기, 혹시 전쟁 대비하는 중이야?"
장기간 연애를 했지만 함께 장 볼 일이 많이 없었던 그는 무작위로 주워 담는 나를 볼 때면 놀리듯 말한다.
그러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혹시 몰라서'를 외친다. 과거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 아침 냉장고를 열자마자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재료들이 새것처럼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언제 산거였더라..' 기억도 못할 식자재들을 납치해 오는 건 좀 줄여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