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울 방법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문득, 부자의 궤도에 다다랐는데도 원하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스쳤다.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금전적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경제적 자유'라는 삶의 형태를 쫓고 있건만, 벌어도 벌어도 완전히 자유롭기란 불가능하다면? 우리 DNA에 박힌 생존본능과 사회적 압박 덕분에 경제적 불안에서 영영 헤어 나올 수 없도록 설계된 게 인간이라면. 그렇다면 개인이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하는 원인은 돈이 아니므로 '경제적 자유'란 허상이 맞는 일이었다.
경제적 자유. 이 말에 들어가는 '경제'와 '자유'라는 두 가지 용어의 순서상, 경제가 충족되면-혹은 되어야만- 자유가 뒤따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꼭 경제와 자유가 바늘과 실마냥 따라다니지 않는데 말이다. 당연한 소리 하냐 싶겠지만, 한편 돈이 있어야 자유도 생기는 것이라고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물질의 소유로부터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들어왔다.
하지만 기질적으로 그러한 개념과 반대로 살아온 것도 같다. 가끔 사고 싶은 물건이 있긴 해도 소유에 큰 욕심이 없었고, 부동산 투자를 한다면서 갖고 싶은 집은 서울 강남이 아니라 내 고향 나고 자란 동네의 집이다. 갖거나 소속되기보다는 늘 비우고 도망치는 쪽을 택했는데, 돌이켜보면 물질이든 이름표든 나를 사회 속에 줄 세울 수 있는 무언가에서 해방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완전한 자유로의 도달은 소유와 소속과 다른 방향에 놓여있음을 자연스레 깨달아왔다.
경제적 자유라는 표현을 어떻게 내 방식으로 정의할까 곱씹다가, 경제는 수단이고 자유는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둘은 이어져있으면서도 별도구나. 경제적 충족을 이루려는 노력과 동시에, 자기만의 자유로울 방법에도 연습이 필요하구나. 막대한 돈을 갖고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수단은 갖췄지만 방법에 서투른 거겠지. 좋은 수영장을 갖고도 헤엄칠 수 없는 것과 같겠지. 반면에 헤엄치는 방법을 익히면 수영장이 없더라도 마음에 드는 아무 바다에서 훌렁 벗어던지고 뛰어들 수 있다. 무언가의 소유와 무관하게 해방된 모습. 타인의 시선, 사회적 관념,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에서의 해방.
내가 원하는 자유는 그런 모습이라, 경제적 자유에서 나의 방점은 자유에 찍혀있다. 해서 내겐 자유로움을 익히기만 해도 경제적 자유를 50%는 이룬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경제력은 자유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고, 나는 그것을 쥐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개인투자자이다. 미래 걱정 없이 놀고싶고 부모님께 물질적 효도도 하고싶다. 하지만 이것이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돈이 있어야 자유로운 사람과 가진 게 없어도 자유로울 줄 아는 사람, 과연 무엇이 자유로운 삶인가 싶은 거다. 경제적 풍요를 통해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를 확장해서 돈이라는 물질 자체에서 자유로운 상태, 이러한 경지가 진정한 경제로부터의 자유이자 자립이고 안빈낙도의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