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았다고 다 부모는 아니다

by 지히

2020년 6월에 작성한 글

낳았다고 해서 다 부모는 아니다. 나는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이 0에 수렴한다. 안 좋은 기억들 뿐이라서 가끔 생각이 날 때면 피가 거꾸로 솟음을 느낀다. 엄마는 나를 본인의 소유물쯤으로 생각했기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때리면 맞고, 욕하면 듣고,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힘이 없으니 많은 아동들이 부모로부터 학대와 착취를 당하는 것 같다. 이모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가 너를 이만큼 잘 키워줬으니 너도 엄마한테 잘해야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아프면 골방에 처넣어 기도를 시키고, 옷은 다 주워서 입히고, 말을 듣지 않으면 다 벗겨서 내쫓고, 배고파하면 그 앞에서 약 올리며 먹어도 되나..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를 싫어했다. 엄마가 혼자 2박 3일 교회에서 진행하는 집회에 갈 때면 너무 행복했고 엄마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귀신보다 무서웠다. 언제 화내고 때릴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하지만 나를 공감해 줄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친구들이 말하는 엄마와 내 엄마는 사뭇 달랐다. 차라리 날 낳아준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절대 공감해 주는 법이 없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 내 탓부터 했다. 본인이 매일 먹고 누워있는 건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살찐 것까지 내 탓을 했다. 엄마에게 부정당하고 거부당했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나는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2차 성징을 보였을 때도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빨리 커서 이 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버텼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엄마의 언어폭력은 그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기숙사에 살았는데 엄마가 야자 시간에 학교에 찾아왔다. 주말에 나에게 쌍욕을 퍼부었던 게 미안하다고 울면서 사과를 했다. 그리고 또 그 주말에 또 눈을 부라리며 욕설을 해댔다.


늘 돈이 없어 궁핍했지만 대학교 때는 다른 친구들과 비교가 훨씬 많이 돼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누구는 용돈을 얼마씩 받고 옷 걱정, 밥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니는데 나는 학비, 책값도 갖은 눈치를 다 보면서 받아야 했다. 왜 의사 집안에 의사가 많고 공무원 집안에 공무원이 많은지 알았다. 그 길을 가봤으니까 자식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건데.. 나는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 친구들이 차를 타고 간다면 나는 바람 빠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엄마는 더 가관이었다. 주말에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는데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술집일 못 시킨다고 말하고 학교 교수님들한테 전화 돌려서 너 술집에서 일한다고 소문낼 거니까 당장 그만두라고 협박을 했다. 그냥 서빙만 하는 호프집이었는데도 말이다. 용돈 한 푼 준 적이 없으면서 내 성적으로 장학금을 타서 혼자 다 쓰기도 했다. (어릴 때는 명절에 받은 용돈을 줄 때까지 윽박지르고 때려서 뺏어가기 일쑤였다.) 내가 살았던 장학숙 사감님한테 전화해서 나를 쫓아낼 수 있는지 물어봤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전화를 해서 너희 엄마 왜 그러냐는 소리를 듣게 했다. 취업 후에는 직장에까지 전화를 했기에 이사나 이직을 할 때 집에 절대 알리지 않았다.

그 후 1년 정도 미국에 있다 왔다. 타국 생활을 하며 힘은 들었지만 엄마를 보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단 한 번도 보고 싶거나 궁금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본가에 몇 달간 있으려고 했는데 역시 엄마 때문에 바로 나왔다. 엄마랑 같이 사는 동생이 너무 안쓰러웠다.

아빠랑 나, 동생이 외할머니를 뵈러 간 적이 있다. 외할머니가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너무 힘들면, 이혼을 생각해 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빠에게 잘하라고 하셨다. 아내 잘 못 만난 사위는 불쌍하고 부모 잘 못 만난 저희는 안 불쌍하세요?라고 묻고 싶었던 걸 간신히 참아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아빠에게 말했다. 본인이 선택한 일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아빠는 엄마라는 사람을 선택해서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기로 선택해서 우리를 낳았다. 근데 우리는 엄마를 선택한 적이 없다. 아빠가 불쌍한 지, 우리가 더 불쌍한지 물어보았다.

나는 살면서 내가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가 초등학교 때,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퍽하면 나가 죽으라고 말했다. 나는 죽을 용기도, 엄마를 죽일 용기도 없었기에 죽지 못해 살았다.

아빠는 나랑 동생 때문에 엄마랑 이혼을 못 했다고 했다. 우리를 생각했으면 진작에 이혼을 하는 게 맞았다. 그래야 장학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 아빠는 나랑 동생이 추후에 결혼할 것까지 생각해서 그런 판단을 한 것 같은데 나는 결혼 생각도 없을뿐더러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겨도 절대 엄마에게 보여줄 생각이 없고, 결혼식장에 초대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아빠 인생도 결국 아빠가 선택하는 거다.

집에서 벗어난 뒤로 나는 훨씬 행복해졌다. 엄마가 내 인생에서 없는 한 앞으로 더 행복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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