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없어도 괜찮아

by 지히

2025년 7월

어제 새벽 3시쯤 잠에 들었다.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나서였다. 특히 엄마만 생각하면 어렸을 때 받았던 수모와 증오, 모진 말들과 행동들이 하나하나 기억이 나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우리 자매는 5년 이상 엄마랑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이 없다. 그 시간 동안 엄마 번호는 물론 카톡도 차단되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나와 동생이 다른 점은 동생은 어렸을 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반면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말이 맞다.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커서 엄마가 나이 들면 복수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크면서 미워하는 일 또한 내 에너지소모라는 걸 깨닫고 무관심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나에게 더 이상 필요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아빠를 통해 엄마가 우리 집에 와보고 싶어 한다며, 먹고 싶은 과일이 있는지 묻는 연락이 왔다.
순간 '엄마는 내가 아이를 가지면 자신을 이해할 거라 여겼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나는 전보다도 더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랬다, 엄마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엄마를 싫어해서 무의식 중에 너에게도 그랬나 보다는 말들도 이제는 핑계라는 걸 안다.


적어도 부모라면 자식이 배고파하거나 아플 때 최소한의 보살핌은 제공해줘야 하지 않나. 하지만 내 엄마는 배고파하는 나를 앞에 두고 약 올리듯 혼자만 음식을 먹어댔다. 보통의 엄마들은 본인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자녀 입으로 들어가는 게 우선이던데 우리 집은 달랐다.

내가 밖에서 걷다가 혹은 뛰다가 넘어져 아파할 때마다 달래주기는커녕 말 그대로 배를 붙잡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건 사람마다 웃음 포인트가 다르니 그럴 수 있다 치자.)

감기에 걸려 기침하면 시끄러우니까 방에 들어가서 해라, 배가 아프다고 하면 나한테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라, 뼈가 부러졌을 때는 한 번만 더 다치면 병원에 안 보내줄 테니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아프거나 다쳐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게 되었다.

이 외에도 학교 준비물이 필요하다고 하면 나에게 맡겨놨냐고 했고 내가 말대꾸라도 하는 날엔 눈에 보이는 물건을 집어던지고 때리기 일쑤였다. '진짜 엄마라면 이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을 거야'라는 생각이 어린 나이에 들 정도로 나를 비난하는 말투와 경멸하는 눈빛은 끊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 대학교 입시, 취업과 퇴사, 심지어 미국에 1년 넘게 가 있을 때도
부모님이 내 인생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구태여 부모님과 상의하지 않았다.

부모의 보호와 관심을 필요로 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존재가 이제 와서 하려는 '부모 노릇'이 전혀 달갑지 않고 불편을 넘어 불쾌할 정도다. 나도 '자식 노릇'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늘 그랬던 것처럼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면 좋겠다.


아빠한테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스트레스받으니까 얘기 안 했으면 좋겠다. 아기 낳고 나서도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보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아빠는 알겠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빠는 100% 편하냐, 그것도 아니다.
우리 가족이 불안정하고 궁핍했던 건 엄마가 경제활동을 일절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아빠 영향이 크다.

다단계, 세 번의 보증, 신용불량, 경매로 넘어간 집...
올해 2월에는 퀀트바인인가 코인으로 돈 벌 수 있다며 나와 동생에게 권유했다가 사기 같다고 거절하니까 자기 인생 헛살았다며 신세한탄을 했다. 그 이후로 코인 이야기는 안 했는데 아마 망한 듯
얇디얇은 귀와 쉽게 돈 벌고 싶어 하는 마음, 정확하게 알아보지 않고 하는 투자(그렇다고 따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님) 딱 사기꾼이 좋아하는 유형이다.
아빠가 엄마 옆에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나는 이런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아서 더더욱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는데 다음 달이 출산 예정일이라니.. 역시 인생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걸 잊고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고 싶은 생각도, 자신도 없다.
지금의 부모님이 어렸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엄마는 집안에 짐을 한가득 쌓아두고 창고인지 집인지 분간이 안 되는 공간에서 365일 24시간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종교생활을 하고 있고 아빠는 그런 엄마가 싫지만 떼어내지 못해 뒷바라지 아닌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이런 친정이면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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