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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Jul 17. 2020

코로나 시대의 사랑

2007

단단한 병임이 틀림없다. 가장 안정적인 시간을 걷고 있는 현재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안주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 어딘가 아픈 것이다. 누군가 혹은 무엇이 나를 병들게 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시간 그 자체인가. 고민해보고자 자세를 잡는다. 허리에 단단한 배게를 받치고 왼쪽 다리를 꼰다. 두 팔을 지지대에 올린다. 고개를 살짝 비튼다. 그때 달겨드는 잡념들, 남은 대출금과 어머니의 건강, 반려견의 목욕 주기, 밀린 빨래를 내일 할 것인가, 뽀얀 물때를 보아하니 샤워 커튼도 교체할 때가 되었고, 앞다리살을 양념해서 얼려놓은 것을 지금 꺼내 둬야 오늘 저녁에 볶을 수 있겠지. 하다 못해 친구들의 고민까지 얹혀 온다. 당장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딱히 심각한 것도, 뭐 하나 급할 것도 없다. 그래도 따라붙는 초조함. 무엇인가 놓치고 있음에 틀림없다. 


매우 사사로운 문제와 해결 방법에 대해 의식의 흐름처럼 고민과 비슷한 사고 과정을 거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일상일 뿐이다.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보면 지금보다 심각한 상황은 왕왕 있었더랬다. 가까운 누군가가 아팠다던지, 혹 죽음에 가깝던지. 생각해보면 중환자실에서 타인들의 심각한 건강상태와 마주하며 어느 범위까지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해본 것은 지금이 가장 절정이 아닐까 싶다. 전화로 환자들의 컨디션을 묻는 보호자들, 의식이 있는 환자들은 하나 같이 가족을 찾아댄다. 이들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애초에 입원을 하게 만들었던 질병 자체가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보이지는 않지만 끈질기고 지겨운 벽이다. 잘못은 누구에게도 없다. 


왜 면회를 하지 못하는지 이해한다면 다행이지만 섬망 때문에 인지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가두어 놓고 밥도 안 주고 가족들 얼굴도 못 보게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할머니가 있었고, 난데없이 집에 가겠다고 몸을 크게 움직이다가 침대에서 떨어질 뻔한 할아버지(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할 정도의 작은 체구를 가진)도 있었다. 또 우격다짐으로 3층 중환자실 입구까지 와서 면회를 잠깐이라도 해달라는 독촉을 하는 보호자도 있었지만 예외는 없다. 하다 못해 면회를 하기로 했다는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이 가장 난감해하고 가슴 아파하는 상황은 끝이 보이는 환자에 대한 그것이다. ‘코로나 시대’ 이전이었다면 보호자가 환자 곁에 상주하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을 함께 가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임종 직전에야 얼굴을 겨우 볼 수 있는 틈새 같은 찰나뿐이다. 그것도 직계만. 오로지 두 명까지. 그중에는 남보다 못한 사이인 가족도 있을 수 있고, 이 환자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혹은 그 반대의 관계가 직계가 아닐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알 길도 없고 만약 그렇다고 해서 허용하기도 어려운. 


최근 굉장히 젊은 환자가 사망을 하였다. 어두운 미래는 정해져 있었지만 그 종결점이 어디인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결국엔 POLST를 구득하고 이틀 정도 버티다가 유명을 달리하였다. 젊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 같은 것이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한없이 가혹하다. 누리지 못할 앞으로의 삶과 그토록 싱싱했던 꽃다발이 반으로 뚝 꺾이는 절망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데 온전한 현실감을 갖추고 그것을 마주하는 부모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이번 가족들도 비슷한 경우였지만 면회 제한 때문에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하루에 서너 번씩 환자의 안녕을 묻는 전화가 왔지만 짜증을 내는 의료진은 없었다. 모두 그럴 만하다고 자연스레 여겼다. 누구 하나 약속한 적은 없지만 강력한 면회 제한이라는 조치를 피해 합당한 면회를 최대한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시술이나 검사와 관련된 동의서를 받는다는 핑계로 병원으로 호출을 해서, 방문한 김에 침대 발치에서라도 환자의 얼굴을 보게 하였다. 그 시간이 조금 길어져도 못 본 척하였다. 환자의 상태가 치명적인 범위로 살짝이라도 어그러지는 듯하면 즉시 알렸다. 와서 손이라도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지난 후엔 늦는다. 그런 상실감은 모두에게 상처다. 


그 날, 환자는 딸꾹질처럼 숨을 쉬며 밑동이 거의 없는 촛불처럼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그때 경고음이 울리지 않을 정도로 심박동이 순간 불규칙해지는 순간을 나는 보았다. 직감적으로 지금 보호자를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담당 간호사는 계속 이 상태였는데 좀 지켜봐도 괜찮지 않겠느냐 반문했지만 직감 같은 것이 나를 서두르게 만들고 있었다. 책임간호사라는 타이틀을 방패 삼아 직접 연락을 했다. 자다 깬 목소리로 바로 출발한다고 했다. 보호자를 기다리는 15분 동안 큰 변화는 없었지만 나는 속이 탔다. 10분, 5분이 지나고 다행히 차박차박 하는 발소리가 곧 들렸다. 


“보호자분, 얼른 오세요.”

그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했다. 둘은 만나야만 했다. 지금 당장. 마스크를 단단히 한 보호자가 서둘러 환자의 손을 잡는 순간 거짓말처럼 모니터의 심박동이 느려졌다. 동시에 불규칙해졌다. 곧 얕은 파도처럼 춤을 추었다. 바르르 떨더니 멎었다. 더 이상의 날숨은 없었다. 방금 세상이 무너진 부모들의 오열과 한스러운 숨소리만이 중환자실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다. 환자가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애써 면회를 중간중간 허용하게 했던 모두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신체 보호대를 잠시라도 풀어두고 그의 말을 전부 경청해주었던 어느 간호사의 관심이 없었더라면, 돌이켜보니 마지막이었던 그 순간에 보호자를 호출하는 결단을 하지 않았다면-이것은 사랑일까. 오지랖일까. 겸허하고 아가페적인 개념을 품을 까닭도 의무도 없다. 다만 모두의 팔이 안으로 조금 굽었을 뿐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가정을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그 반추 자체가 훗날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줄여주곤 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직업이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보호자는 장례식 없이 환자를 보내기로 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후회 없는 선택에 다시금 안심이 되었고 동시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 이거다.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초조함의 정체.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이것을 놓치면 안 된다고. 이 따위 코로나 시대에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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