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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Sep 15. 2020

다이너마이트

2009

  현관문 밖은 마스크로 꽉 차있다. 오히려 집 안이 더 자유로운 느낌. TV에 콧구멍이 보이게 마스크를 하고 방송을 하는 리포터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다. 갓난쟁이 바지춤 마냥 얼른 치켜올려 주고 싶다. 집과 병원만 오가고 있으니 TV 시청 시간이 훨씬 늘어나서 안 보던 드라마도 보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세상엔 코로나가 없었다. 마스크 없이 온 거리를 싸돌아 다니고 한강 둔치에서 맥주도 마시면서 협소한 술집에서 진탕 술도 마셔댄다. 갑갑한 마스크와 함께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쩌면 저리 생경한 지. 아침마다 문진표를 작성하는 데는 이제 이골이 나는 수준을 넘어서서 한 달을 꼬박 출석체크를 하면 꽤 괜찮은 할인쿠폰을 주는 쇼핑몰이라고 여기기로 했다(아무도 챙겨주진 않겠지만). 언제까지 해야 할까. 마스크 위로 쓴 안경에 서린 김처럼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그 안에는 길고 가는 심지가 있어 아주 조금씩 타들어가고 있다.


  어머니는 작은 카페를 경영 중이다. 직업 특성상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과 굉장히 빈번하게 만날 수밖에 없다. 주문을 받거나 손님들과 시답잖은 담소를 나누는 게 일상이라 웬만하면 덴탈 마스크를 늘 끼고 있긴 하다고 했다. 하지만 단골이 온다면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물장사(?)는 단골 잃으면 끝이라고 했다. 뉴스에서 보던 소상공인의 인터뷰가 퍼뜩 떠올랐다.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어차피 매 한 가지라고. 인증된 단골들 말고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시고 손 위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더니 손 위생이 뭐냐고 되묻더라. 손 씻기랑 차이점이 있는 거냐고 재차 하는 물음에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게, 이거 서로 뭔가 다른 차이가 있는 것인가. 뭐든 깨끗한 게 중요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는 안타깝지만 코로나 관련 확진자가 안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당분간 어머니는 못 볼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불특정 접점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라고, 병원과 집만 조심히 오가며 어떻게든 무감염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것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셧다운을 당한 몇몇 의료기관을 예를 들었다. 자못 서운해하시는 그대, 우리에겐 영상통화가 있지 않냐며 위로를 해드렸다. 지금은 조금 더 몸을 움츠릴 때입니다. 어머니. 저도 답답해 미치겠어요,라고 말한 지가 석 달이나 지났다. 역시 견딘 시간만큼 심지가 훨씬 더 짧아졌다.


  어렸을 때 내 방에는 굉장히 얇은 플라스크 병이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솝우화 속 주둥이가 기다란 학이 밥그릇으로 쓸 것 같은 것이 암튼 있었다. 꽃 같은 것으로 채우기도 애매한 사이즈였고 그렇다고 버리기엔 어딘가 쓸모가 있을 것 같은. 어머니는 버리라고 했지만 끝내 거부하고 책장 위에 올려 두고는 가끔 관찰을 했다. 비눗방울처럼 표면이 매끈하며 영롱하게 무지개 빛이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었다.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와작 하고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함과 그래서 지키고 싶은 마음이 공존라는 물건이었다. 마치 지금의 내 심정 같달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무시될 수 있는 이 얇디얇은 경계를 지켜야 하는데 무척 수고스럽기만 하다. 마스크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오픈된 감옥이다. 그곳에서 쌓인 응어리 같은 것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타들어가는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눈을 떼면 폭발할 것 같다. 유리 날 같은 지금의 경계를 어쨌든 유지해야 한다. 나를 포함한 의료진과 환자들의 안위를 위함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이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의 확진 소식과 그 파급력이 관련된 수많은 뉴스들을 다시 읽어낸다. 다행히 나의 심지는 다시 길어지고 속도도 더뎌진다.


  어느 날 플라스크의 밑동을 관찰하고 싶었다. 옆면을 따라 유려한 곡선을 이루며 마무리되는 각도와 다른 표면보다 조금 더 두꺼워 보이는 것이 그 날따라 호기심을 굉장히 자극했다. 무른 나이테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몇 번을 망설이다가 무심코 집어 들었는데 그만, 손에서 미끄러져 버리고 말았다. 방바닥에 닿으며 깨졌다기보다는 아주 그냥 으스러졌다. 형체라고는 둥그런 주둥이뿐이었다. 펑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잠시 멍했지만 본능처럼 잘은 파편들은 젖은 휴지로 훔쳐 내었다. 이내 몰려오는 후회감, 동시에 더 이상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도 공존했다. 조금 전 나는 굳이 밑동을 봐서 뭐 어쩌려는 속셈이었을까. 하지만 이제 청소할 때마다 플라스크 주변에서 굳이 그 템포를 늦춰가며 전전긍긍하지는 않아도 되었다. 애정 했지만 막상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것. 파괴되었던 그 찰나는 심지가 번개처럼 짧아져서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지는 순간이었다. 지킬 것이 없어지긴 했지만 소중한 것도 동시에 폭발하였다. 파자작. 플라스크는 이제 없다.


  모두가 질색하며 아끼고 있는 플라스크는 다행히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몇 번의 위기와 자잘하게 일어났던 사건들은 어떻게든 잦아들고 있는 추세이고, 그 후 각자의 참을성을 무기 삼아 멱살을 잡고 여기까지 끌어왔다. 아직도 지겨운 다이너마이트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모두의 심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그것보다는 길다. 폭발이 목적이 아닌 심지의 불을 꺼뜨리는 것이 모두의 최종 목표이다. 그것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그 날, 나는 깊은 뇌관까지 닿아있는 단단한 심지에 있는 힘껏 불을 댕겨 나의 다이너마이트를 비로소 터뜨릴 것이다. 펑펑! 아마도 폭죽처럼 터져나갈 거다. 엄청나게 커다랗고 화려한 무늬를 그리면서. 일주일 내내 그럴 것이다.


  출근길이다. 동이 튼다. 확실히 일출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다. 서글서글한 가을이 바로 앞에 왔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의 심지는 본의 아니게 조금 짧아질 것 같다. 이토록 붉고 기분 좋은 대기를 헤집고 기어코 해는 떠오르겠지. 그래, 동은 튼다. 조금만 차분히 기다리는 수밖에. 심호흡을 해본다.


  나중에 어머니는 그러길래 조심하지 그랬냐는 한 마디 말곤 별다른 말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사주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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