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는 그릇이 있다. 완성된 도자기가 아니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질흙 같은 그릇. 때로는 커졌다가 때로는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이 그릇은 외부로부터 들어오거나 내면에서 생긴 감정들을 담아낸다. 스트레스가 없고 평안한 날은 마음의 공간이 넉넉하여 그릇도 마음껏 커진다. 이런 날은 날이 선 공격도 대담하게 품어주곤 한다.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은 스트레스와 피로로 마음속 공간이 빼곡해진다. 내 질그릇도 초라하게 쪼그라들어 뱅글뱅글 돌아간다.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칠 말들도 그릇 속에 담기지 못하고 튕겨져 나와 마음 여기저기를 공격하고 생채기를 낸다. 더 나아가면 뾰족해진 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가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두 돌이 지난 우리 아기는 밤잠을 쉬이 드는 편은 아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 더 그러했다. 엄마 아빠가 늦은 집안일을 하느라 그랬는지, 아니면 아기가 오랜만에 발견한 추억의 장난감을 한참을 갖고 노느라 그랬는지 아기의 잠 때를 놓쳐버렸다. 가뜩이나 어린이집에서 물놀이를 하고 와 잔뜩 피곤했을 아기는 지치고 졸려 악을 쓰고 울며 괴로워했다. 집안에 있는 것도 힘들어하여 밖으로 나가자며 자꾸만 채근하였다. 별 수 없이 우리 부부는 아이를 품에 안고 깊은 밤으로 나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밖에는 여름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 있는 가장 큰 우산을 꺼내어 펼쳤지만 세 식구의 몸을 다 가려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기는 아빠 품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남편이 아기를 안으며 우산을 들기에는 너무 힘들기에 엄마인 내가 우산을 받쳐주었다. 나보다 키가 훨씬 큰 남편이 비를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우산을 높이 치켜드느라 팔이 휘청거렸다. 가끔씩 무게를 못 이긴 우산대는 아기의 머리를 콩콩 치곤 했다. 졸리고 힘든 아기는 불평조차 하지 못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별안간 나간 산책에, 더구나 빗속을 불편하게 오가는 남편은 몹시도 힘들었나 보다. 낮에 장거리 운전을 했기 때문에 고단함이 배로 찾아왔을 것이다. '하~'하고 자꾸만 내뱉는 남편의 짜증 섞인 한숨 소리가 내 마음을 짓눌렀다. 화가 나 보이고 지쳐 보여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가 '나도 힘든 거 참고 있다고!' 하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음의 그릇이 떠올랐다.
'오늘 남편의 마음속 공간은 가득 들어찬 피로와 스트레스로 비좁디 비좁은 거야. 마음의 그릇이 넓게 펴져야 하는데 공간이 좁아서, 여유가 없어서 짧은 지름으로 뱅글뱅글 돌고 있네. 내 마음의 그릇을 넓혀서 이해해주자. 받아주자. 넘어가 주자. 배려해 주자. '
주문처럼 되뇌며 캄캄한 아파트 단지를 오갔다. 추적이는 빗소리가 내 마음을 달래주었고, 아빠의 어깨에 기대 졸린 눈을 부비는 아기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힘을 주었다. 부자에게 우산을 씌워주느라 점점 젖어드는 내 왼쪽 어깨가 은근히 훈장처럼 느껴졌다.
출산 직후 나는 혼돈에 빠졌었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 한 극심한 호르몬의 변화를 겪으면서 매일 마음이 요동쳤다. 내 마음속 그릇은 넓게 퍼져나갈 새 없이 매일 쪼그라들기만 했다. 그렇게 그릇에 담지 못한 나쁜 감정들을 남편에게 뾰족하게 뱉어내는 날들이 있었다. 우리 남편은 그때마다 있는 힘을 짜내어 본인의 그릇에 내 감정을 담아 주었다. 그런 나날들에 비하면 오늘의 작은 사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부의 마음의 그릇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한 사람의 그릇이 작아지면 다른 한 사람은 자기 그릇을 더 넓혀 상대방을 받아 준다. 이렇게 되지 않고 둘 다 작아지기만 하면 담기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서로의 곁을 떠돌며 상처를 내게 된다. 때로는 그런 날이 있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힘을 내어 그릇을 넓혀 그 감정들을 받아준다면. 조금만 서로를 더 이해해 준다면. 평생 내가 남편에게 가질 마음을 되새기며 이곳에 차분히 펼쳐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