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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timeMoon Nov 04. 2017

잃어버린 김지영씨의 목소리,그리고 김지영씨는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김지영씨의 목소리,

그리고 김지영씨는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82년도는 유달리 김지영이 많은 해이다.


이전의 여자이름은 '자'나 '숙'으로 끝나는,

각각의 의미보다는

그냥 어느 집의 딸,

몇 번째 딸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그 시대는 그냥 그런 시대였다.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냥 그 해 수많은 지영이들 중

전혀 특별하지 않은 지영이의 이야기이다.


근데 난 왜 이렇게 공감이 갔을까?


 

82년생 김지영 표지

(이 부분부터 책에 대한 주요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뒤로 가주세요!)


82년생 김지영은 출산 후 주위사람들에게

빙의되는 듯한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김지영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의 과거에서 현재까지

일정기간을 묶여 보여준다.


거기엔 김지영이 태어나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그리고 결혼 후 아내, 엄마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있다.



"당신보다 당신 속을 더 잘 아는 게 나야.

당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으니까

이제 중국타령 그만해."


위 대사는 김지영의 아빠가 IMF 여파로

정년퇴직을 당하고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하자,

김지영의 엄마가 한 말이다.


결국 김지영의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자

결과적으로 아이 셋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김지영의 아빠 스스로가 '자식 잘 키우고 잘 살았다, 내 인생 성공했다'

자화자찬 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그리고 김지영의 엄마는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한 돈으로 오빠들 학비를 보태

그 오빠들은 커서 검사가 되고,

교사가 되어 집안을 일으킨 아들이 되고

그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희생이란 멍에를

쓰고 한구석에 가만히 있었던 것처럼

이번 역시도 가만히 재기한

가장의 옆자리 어딘가에 있는다.


엄마라서 그런걸까,

아내라서 그런걸까,

여자라서 그런걸까.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답은 알 수 없다.


집안을 잘 버틸려면 돈도 필요하지만

누군가의 엄청난 노력도 필요하다.


집안일을 하고

구성원을 챙기고

한정된 금액내에서 가족들이 최고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있도록 하고

얼마 안되는 남은 돈은 언젠가 있을

가족들의 큰 일을 위해 불리기도 하고

저축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역할의

남여구분이 많이 허물어졌지만

김지영의 시대에서는 대부분 엄마의 몫이었다.


즉, 훌륭한 가장이 있으면,

더 훌륭한 아내 혹은 엄마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언제나 찬사와 경배의 대상은

표면적인 가장의 몫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이렇게 김지영 이전의

또 다른 김지영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옷차림이 얼마나 불편한 건지

두 눈으로 확인하라고"

학칙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도부와 선생님들은

여학생들의 면티와

운동화를 모르는 척했다.


김지영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사이다.


여학생들이 지켜야하는

수많은 교복 학칙과 대조되는 남학생의 학칙,

출석번호 1번부터는

자연스럼게 남학생이 급식 순서도

자연스럽게 남학생이 먼저인 학교 생활들


이 책에서는 이를 남자들을 향한

부러움섞인 원망이 아닌

이러한 규칙을 만든 어른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물론 각 시대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규칙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82년생 김지영에서도

이러한 불합리한 규칙을

따질 수있는 여학생이 있다.


그래서 그들이 따지는 건 과연 무슨 내용일까?


겨우 급식을 남자들이 먼저 먹는게

불공평하니 순서를 주기적으로 바꿔야한다는 것,

여학생들 역시 활동량이 많으니

교복이 좀 더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다.


그들은 부당함을 인정하고

며칠을 억울해하며 분통해하다

큰 맘을 먹고

어른인 선생님들에게 혼날 것을 각오하고,

혹은 꽤씸죄로 운동장을 오리뜀뛰며

얻어낸 성과치고는 너무나 소소하다.


도대체 왜 그들이 원하던 것은

그리도 소소했을까?


그들에게 허락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아주 소소한 것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큰일이라 생각되는 게 아닐까


수많은 불평등과 부조리함에 익숙해져

그들이 원하는 변화는 너무나 소소했다.


그러나 그 변화마저도

그들을 100% 충족시키지 못한 채

만족을 해야만 했다.


마치 여학생들의

학급반장 당선율이

40%정도를 차지한다는 것만으로도

여학생들의 힘을 강해졌다고 하며

여성취업률이 29.6%가 되었다고

여초현상을 운운하는 것처럼말이다.

 

여성들은 그들에게 주어지는

변화의 폭이 미미해도

이를 대단한 성과처럼 애기하며

여성들이 살기 좋아졌다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 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김지영씨가 중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 직장인을 걸쳐 결혼을 하고,

아내에서 엄마가 되었다.


과연 그녀의 삶은 어떨까?


다른 여자들과 같이 결혼을 하고도

열심히 일을 하다,

어른들의 자식에 대한 기대로 임신을 하고,

회사에 폐를 끼치기 않기 위해

꾸역꾸역 회사를 나가다,

1년정도 되는 육아휴직을 쓰다가,

남편과 아내 둘 중 한명이

아기를 돌봐야하는 폭탄게임에서

스스로 엄마라는 이유로

폭탄을 안고 회사를 나온다.


자신이 엄마니깐, 집안일을 해야하니깐

스스로 위로하면서 말이다.


결국 82년생 김지영씨도

그전의 수많은 지영씨들과

같은 길을 걷는다.


세상이 변하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또한 많은 것들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집안일과 육아는

지영씨의 몫이고

돈을 벌고 집안을 이끄는 가장의 노릇은

하고싶어도 하지 못한다.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고,

수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김지영씨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 개 밖에 없었다.


그리고 김지영씨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정신과에 간다.


그러나 그녀의 상처는

그 누구도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도 해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지영씨들의 상처를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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