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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파파 Aug 19. 2021

나도 전부를 걸 수 있을까?

강박과 타협의 갈림길에서

"내가 이 일을 해내서 너무 기뻐, 하지만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라고 친구는 웃으며 농담을 했다. 강박적인 노력의 시간을 보내고, 자부심을 느끼며 그 시간을 회상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
 
- [부자의 언어] 중에서 -


1년 전 퇴사한 직장 후임 P는 입사 전 이미 '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노무 관련 이슈가 생길 때마다 인사팀, 총무팀, 노무팀 실무자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자문을 구하는데, 어찌나 술술 말하던지 부럽다 못해 질투심마저 일었다. 그러던 그와 어느 날 노무사 자격증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제가 법학과라는 이점은 있었지만, 2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거예요. 그때는 사실 멋모르고 한 것도 있어요."


1차 시험 5개 과목(노동법 I, II, 경영학개론, 사회보험법, 민법)은 모두 객관식이고, 영어는 토익 700점 이상으로 대체하기에 어려워도 합격률은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2차 시험은 서술형에 법규와 판례 중심으로 문제가 출제되어 범위도 범위지만, 시험의 난도가 상당히 높다. 특히 요즘 노무사 채용 인원을 200명~250명으로 제한하다 보니, 경쟁률은 역대급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게다가 노동 관련 문제가 기업들의 리스크 관리 핵심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노무사들의 인기가 상종가다. 후배도 이런 이력의 후광을 업고 [카OO 게임즈]로 이직했다. 가끔씩 전해오는 그의 업무 만족도가 꽤나 부러웠다. "차장님, IT업계에 발들이면 다시는 제조업으로 못 갈 것 같아요." 




대학 동기 중 한 명인 H는 일찍 군대에 가서 복학해 한 학년 선배들과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동기들과도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는데, 취업을 핑계 삼아 동기모임에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동기들 사이 '좀 재수 없는 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그러던 그가 지역신문사 기자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도 잠시 3년 후 방송국의 꽃이라 불리는 KBS에 입성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H와는 제법 친했던 나는 그가 방송국에 입사한 2년 후 호프집에서 우연히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닿았다. 대뜸 그가 던진 말은 그간의 서운함을 녹이고도 남았다. 사실 측은함마저 들었다.


"메이저 언론사에 들어가기까지 너무 힘들었어. 신문사에서 방송국으로 이직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쉽지 않았거든. 들어가서도 수습 때 얼마나 굴리든지. 독하게 마음먹고 버티고 또 버티었지. 날고 기는 선배들 틈에 주눅도 많이 들었지만, 이만하면 잘 견딘 것 같아."


가끔씩 TV로 보는 H. 모니터 화면에 비친 그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대견하다. 그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는 지난번 술자리에서 확연히 느꼈기 때문이다. 




10년 전 일이다. 영어 스터디 모임에서 만난 J군. 나와 성을 빼고는 이름이 같아 유독 정이 갔다. 7살 정도 나이 터울이 있던 터라 스터디 멤버들은 나를 큰 J, 그를 작은 J라 불렀다. 회사는 달라도 업무는 비슷해 서로 고민하는 공통 지대가 많았다. 그러다 3년 후 갑자기 카톡으로 잠수를 탈 거라고 통고(?)했다. 회사는 이미 퇴사했다는 말을 덧붙이며. 굴지의 기업은 아니지만 탄탄한 회사라 급여와 복지 측면에서 대기업에 전혀 꿀리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업무와 적성이 맞지 않다고 넋두리를 털어놓곤 했다. 나도 그의 고충을 이해했기에 퇴사 소식이 그리 빅뉴스는 아니었다. 능력도 출중했기에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친구였다. 


그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꾹 참으며 6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걸려오는 전화 한 통. 금융공사에 합격했다는 이야기였다. "형, 그동안 연락 못해 죄송해요. 정말 외부와 연락을 끊고 죽어라 시험공부만 했어요.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했어요. 두 번 다시 하라면 못할 거예요. 합격해서 그래도 다행이에요."


나는 진심으로 J의 입사를 축하했다. 그에게 계획을 묻자 이제부터는 업무 특성상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세계 곳곳을 누릴 거란다. '아, 정말 부럽다...'    




P와 H와 J군. 지금이야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만, 그들도 한때는 절박함과 절실함의 표상이었다. 강박이 얼마나 그들을 옥죄었고, 심연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극한의 고통을 참고 견디며, 어려운 시기를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저마다 능력의 한계치는 있지만, 지레 겁을 먹고 실행에 옮기느냐 마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했으면, 나이키의 심벌인 'Just Do It'이 공전의 히트를 쳤을까. 이 세명은 끝까지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도전에 머뭇거리는 나 같은 사람은 줄곧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강박'의 세기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단지 그들의 성공에 질투와 시기심을 보낼 뿐이다. 그러면서 죽을 만큼 뭔가를 이루기 위해 승부를 걸어본 적이 있었는지 되묻는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합리화하고 적당히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인생의 관문 하나하나를 통과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그래서 늦었지만 40대 중반에 노무사 공부를 해볼까 기웃거리고 있다. 하지만 시작도 전에 여러 합리적(?) 이유들을 갖다 붙인다. 작년 40대 합격자가 전체 3%밖에 안 된다는 절망적인 비율을, 인강과 수험서 등 비용과 시간 청구서를, 차라리 그 시간에 아이와 밀도 있게 노는 것이 더 좋다는 핑계를 덧붙이면서.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 어렵다는 공부에 도전하는 건지. 핑계가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헤집는다. 기회비용의 상실이 얼마나 클지 대차대조표를 따져본다. 그러다 다시 원점이다.  


경험하지 못한 강박의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느냐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형편과 분수에 맞게 살라는 '안분지족'이 강박을 한달음에 넘어뜨린다. 그것도 좋긴 한데... 결론은... 에라 잇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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