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반성하며 성찰하는 인생
'다이소'에 가면 늘 반기는 친구들이 있다. 형형색색 볼펜류와 연습장들. 갈 때마다 습관처럼 하나씩 사들이면, 아내는 늘 타박이다. 돈을 떠나 집에 있으면서 또 산다고. 그래도 이런 소소한 물욕 하나쯤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얀 여백의 연습장이 볼펜, 연필, 형광펜으로 도배되어 일상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줄 때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지난 시간을 복기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틈날 때마다 빛바랜 연습장을 들춰본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를 간추렸더니, '기록', '반성' 그리고 '성찰'이 최상위 리스트에 있다. 지금 연습장에도 이 셋은 세트로 몰려다닌다. 이들이 소거된 일상을 상상하라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록'하는 삶은 글 쓰는 일을 즐겨하는 이들에겐 금과옥조와 같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는 법이기에,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단단히 묶어주는 연결고리가 된다. 기록은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다. 경험과 지식과 지혜가 버무려진 기록은 자신을 정의하는 중요한 명제가 된다. 기록에서 헐거워진 인생의 비루함과 마주하기도 하고,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내일을 기약하기도 한다. 텍스트와 이미지로 도배된 기록 속에서, 망각의 우둔함을 일깨우는 각성제로 둔갑하기도 한다. 기록이 없는 삶은 자신의 부재를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저장된 자신과 기록에서 보여주는 자신과는 확연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객관화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메타인지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반성'하는 삶은 감사일기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녀석이다. 잘해도 반성하고 못하면 두 배로 반성하는 삶. 잘해보자는 의미에서 반성은 일상어가 된 지 오래다. 학교 다닐 때 반성문 한 번 써본 적 없는 범생(?)이었는데, 불혹이 훨씬 넘은 나이에 반성과 붙어살고 있으니, 인생이 만만치 않긴 않나 보다. 반성은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기대되는 인생을 응원하는 영양제다. 반성하지 않는다고 인격의 결함을 논하지는 않겠지만, 반성하는 삶 속에서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려면, 반성은 덤으로 챙겨야 할 중요한 요소다.
마지막으로 '성찰'하는 인생. 미래와 맞닿아 있다. 좀 더 세련되고 올바르게 갈 길을 가자는 의미에서, 성찰은 칠흑 같은 어둠 속 바다에서 고깃배들의 구세주처럼 느끼는 등대와 같다. 인생의 길라잡이로서 실수를 덜하게 만드는 고마운 존재다. 성찰은 반성의 단계를 넘어 미래를 포획한다. 인생의 정답은 없어도, 성찰하는 삶 속에서 하루를 디자인하고 시간을 보낸다면 후회와 절망의 빈도는 훨씬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만큼 성찰은 강력한 치료제이자 단단한 보호막인 셈이다.
이 세 녀석과 매일매일 치열하게 마주하고 있다. 하도 붙어 지내다 보니 싫어질 법도 한데 싫증은 나지 않는다. 물론 그들과 결이 다른 감사와 행복도 있다. 이들이 인생의 윤활유 역할이라면, 기록과 반성과 성찰은 인생을 떠받치는 기둥뿌리와도 같다. 매번 연습장에 빼곡하게 박제되어 있는 세 녀석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물러 터진 나를 그나마 드센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준다. 의문과 질문의 연속에서, 숨 막힐 것 같은 질식의 순간에서, 감정의 눅눅함에 휩싸여 생기를 잃었을 때, 이 세 녀석이 득달같이 달려와 나를 다독인다.
고로, 나는 죽을 때까지 '기록'하고, '반성'하며 '성찰'하는 삶을 살 것이다. 오늘도 동행하는 녀석들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