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도와드릴까요?

그렇게 말을 건넸다.

by 지훈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학교 교정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한 여름 땡볕이 가득했다.

교내에 입점한 유명 브랜드 카페에서는 피아노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직 오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올해 유난한 아열대성 더위 때문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한적했다.


나는 양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었다.

무난한 짙은 블루 색상이었다.

햇살 짱 한 날에는 양산, 비 내리는 날은 우산으로 쓰기에 적합했다.

그럼에도, 외출할 때 이 양산을 집어들 때마다, 그때 온라인 쇼핑몰에서 손가락으로 한 순간 클릭할 때 조금 다른 색상을 선택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계속 들었다.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눈앞에 누군가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끙끙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였고 하얀색 블라우스에 연한 갈색 색상 바지를 입고 있었다.

문제는 두 손 무겁게 들고 있는 쇼핑백이었다.

쇼핑백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뭔가 가득 차있었고

두 팔이 쇼핑백의 무게 때문에 수직으로 거북살스럽게 뻗어있었다.

뒷모습을 보니 아마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정도 나이로 보였다.

학교의 교직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 사람은 양손의 묵직한 쇼핑백을 땅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 뒤에서 아마 일곱 또는 여덟 발자국쯤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한 순간 그 사람은 멈춰 서더니 두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멈췄다.

그리고 그 사람은 허-휴 하는 깊은 한숨을 쉬고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양쪽 어깨에 한 손씩 번갈아 토탁거렸다.

다시 낑-하며 쇼핑백을 양손에 힘겹게 들고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갈등했다.

원래 내가 걸어가는 방향은 이 사람이 걸어가는 방향과 같은 방향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 사람과는 다른 방향인 오른쪽 통로로 우회할까 고민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계속 이 사람을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이 사람을 도와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갈등하며 계속 번민하게 될 것 같았다. 일단 내 눈앞에 안 보이면 홀가분하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나는 우회하는 통로로 가지 않고 그 사람이 걸어가는 방향을 그대로 걸어갔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그 사람 뒤를 따라가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 사람은 몇 발자국 걷다가 또다시 땅바닥에 쇼핑백을 내려놓았다.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사람 정면으로 한 남자 대학생이 이어폰을 끼고 가뿐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 대학생은 그대로 그 사람을 지나쳐갔다.

마치 눈앞에 무거운 짐 때문에 숨 차하는 그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나도 지나쳐갔다.

다만, 슬쩍 옆을 보고 지나쳐갔다.

그 사람은 두 손을 양 허리에 짚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였고, 왜 그 정도로 무거운 짐을 혼자서 들고 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교직원이라면 사무실에 다른 직원과 같이 올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추측을 했고,

그게 아니라면 이 사람은 어쩌면 교내 입점한 어떤 점포의 주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 학생이나 다른 누군가가 없었기에 본인이 직접 물건을 나르게 된 것 아닐까?


나는 몇 걸음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사람은 쇼핑백 무게 때문에 뒤뚱거리면서 내 옆을 지나쳐 걸어갔다.

또 몇 발자국 안되어 멈추고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말은 건넸다.

"조금 도와드릴까요?"

그러니까 쇼핑백 한 개 정도를 들어줄 의향이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본 것이었다.

내가 쇼핑백 두 개를 모두 들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쇼핑백 한 개도 꽤나 무거운 물건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위와 같은 질문을 하기까지 좀 망설였다. 도와준답시고 쇼핑백을 들었을 때 내 힘에 버거울 정도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쇼핑백을 들고 있을 때, 그 사람의 어깨와 팔은 빧빧하게 경직되어 보였고 팔뚝에 힘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또 한 가지, 한 번 쇼핑백을 들어주면 어디까지 이것을 옮겨주어야 할지도 고민스러웠다. 아무리 선의로 누군가의 힘듦을 나눈다고 해도, 지나침은 언제나 그렇듯 좋은 일을 했다는 기분 좋은 행복감보다는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만약 쇼핑백 한 개를 들어준다면 잠정적으로 내 눈앞에 보이는 10여 미터 거리에 있는 횡단보도까지를 마지노선으로 잡았다. 설마 두 쇼핑백 다 들어달라고 하지는 않겠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괜찮습니다. 다 왔어요. 감사합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아. 네. 그럼."

나는 그렇게 응답했다. 더 물어보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갔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조금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어보지 않고 그대로 돌아왔다면 아마 그날 하루 나머지 시간에 두고두고 그 상황을 반추하게 되었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지도 않고 회피했었다는 점에 대해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또는 나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궁색한 변명들을 만들어내느라 진이 빠졌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 사람이 괜찮다고 한 것이 정말 괜찮아서 그랬던 것일까.

아마도 지나가던 행인이 갑자기 본인 짐을 들어주겠다고 하니, 무슨 다른 의도로 본인에게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위 특정한 종교나 신앙을 포교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행인에게 느닷없이 말을 거는 신자들 중 한 명으로 오해한 것은 아니었을까. 충분히 그랬을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여 다른 생각도 들었다. 만약 그렇게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가던 사람이 여자가 아닌 남자였어도 내가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어보았을까. 과연?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게 되었다. 선뜻 나 자신의 질문에 쉽게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 남자가 어린 소년이거나 나이가 많이 든 어르신이었다면 위의 상황과 비슷하게 결국 "조금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어보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외의 경우라면 글쎄 그냥 지나쳤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언론 기사로 읽었던 것인지 누군가로부터 말로 전해 들은 것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내용은 지하철 계단에서 상습적으로 무거운 짐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는 노파가 있었는데, 막상 짐을 들어주면 고의로 어떤 문제를 일으킨 다음, 짐을 들어준 이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사기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다음에라도 위와 유사한 상황이 다시 나타나게 되면, 그때는 그냥 내 갈 길만 보면서 지나쳐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