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저널링이지만 차이가 있다.
손글씨 저널링은 물리적인 노트와 펜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 손가락은 단단한 펜의 물질감을 느끼면서, 그것을 쥐고 펜 끝이 종이에 미끄러지는 감촉을 느끼게 된다. 실체가 있는 현실 공간에서 글자가 하나씩 만들어지는 광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러한 감각 자체가 손글씨 저널링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 아닌가 싶다. 펜 끝에서 잉크가 나와서 미끄러지면서 종이 위에 새겨지는 글자와 그림을 보면서 생생한 감각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손끝으로의 감각 촉각 경험과 눈으로 보는 시각 경험이 어우러지면서, 어쩌면 여기에 더해 묵직한 잉크 냄새와 고즈넉한 종이 냄새라는 후각 경험이 더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손끝으로, 눈으로, 코로 흘러들어오는 각각의 감각이 뒤섞인다. 그리고 역시 하마터면 놓칠뻔한, 종이 위에 펜이 지나가면 들리는 사각거리는 소리, 글자와 그림이 종이에 아로새겨질 때 발생하는 마찰음, "사각..사각.." 소리를 잊기는 힘들다. 그래서 여기에 나의 청각 기관인 귀를 추가하게 된다. 손글씨 저널링은 나의 손가락과 눈과 코와 귀가 한꺼번에 동원되어 몰입하는 경험이다. 이런 식의 감각 경험이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더구나 지금처럼 일상이 디지털 온라인 기기에 접속되어 버린 환경에서 말이다. 그래서 독특하며 그 나름의 가치를 갖는 경험이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저널링과는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경험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 같다.
손글씨 저널링은 그것에 집중할 때는 비록 대부분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다른 디지털 온라인 기기들로부터 한 발짝 정도 떨어져 있게 된다. 나의 손과 눈과 귀가 디지털 기기 화면에서 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시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물론, 사람들은 디지털 기기로부터 조금이나마 디톡스 하기 위해 여행도 가고 운동도 하고 여가시간을 활용하여 무엇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여행지에서도, 운동을 하다가도 문득 정신 차려보면 손안에 디지털 기기에 자신의 손과 눈과 귀가 푹 빠져있는 상태를 발견하게 된다.
손글씨 저널링은 비교적 나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주장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손글씨 저널링의 독자는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니까. 내가 쓴 손글씨 저널링을 사진으로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지 않는 한, 아마도 나 이외의 다른 이가 탐독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디지털 저널링은 대개 외부 독자를 염두하게 된다. 물론, 디지털 저널링도 비공개로 설정하고 외부와 공유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만을 독자로 한정하게 되기는 하다. 하지만, 디지털 저널링은 비교적 쉽게 다른 이들에게 나의 생각과 감정, 주장, 의견을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다. 디지털 저널링을 하게되면 아무래도 대부분은 상호연결된(인터커넥티드) 상태이므로,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다른 이들과 교감하고 교류하고 상호 연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밑에 깔려있다고 보인다. 실제로 디지털 온라인 저널링은 그러한 기능이 주요 기능이기도 하다.
올해 2월에 손글씨 저널링을 시작했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손글씨 저널링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손글씨 저널링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2월부터는 좀 더 꾸준히 지속적으로 손글씨 저널링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신없이 외부 상황에 휩쓸려 살아온 나 자신을 전체적으로 정돈하고 갈무리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브런치 스토리의 작가 신청도 했고 5월부터 이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쓰면서 디지털 온라인 저널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잡았던 방향과 상충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손글씨 저널링을 한다는 것이 애초에 설정한 큰 명분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디지털 저널링으로 풀어낸다면 다시 디지털 온라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아닐까. 또는 읽는 사람들이 이율배반적으로 느끼지 않을까.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손글씨 저널링의 마술 같은 효과를 기대했는데. 결국은 그 이야기를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플랫폼에 접속하여 쓰고 공유하며, 독자 역시 디지털 온라인 플랫폼으로 "디지털 디톡스에 손글씨 저널링이 일정 정도 효과가 있다"는 주장의 글을 보게 된다? 이거 좀 이상하기는 했다. 디지털 디톡스 이야기를 디지털 시스템을 이용해서 알리고 공유하고 있다? 숲 속에서 걷거나 뛰는 것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내가 온라인 채널로 시청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까 싶기도 하다. 그 시간에 온라인 채널 시청을 접어두고 문을 열고 자연으로 나가서 걷는 것이 내 몸에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내가 그러한 채널이나 온라인 콘텐츠를 찾아서 보는 것은 동기부여 발굴하기, 통찰력 찾기, 영감을 받기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것에 대하여 뭐라고 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든 말든, 통찰력이 있든 없든, 영감을 주든 안주든, 어쨌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무슨 의도로, 어느 특정한 이유로 그러한 것들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손글씨 저널링과 디지털 저널링은 저널링을 공통의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애당초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손글씨 저널링은 세상에서 약간 떨어져서 나를 정돈시키고 나에게로 집중하는 시공간을 마련해 준다. 하루 동안 있었던 번잡스럽고 복잡한 일과 생각들을 찬찬히 정리해 본다. 또는 나의 감정을 요동치게 했던 일이나 사건, 사람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적으면서 격동 치는 파도를 잔잔한 물결로 만들어 본다. 그리고 내일 대처할 일 또는 다음 주에 내가 하려고 하는 계획을 설계해 본다. 거의 오롯이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반면에, 디지털 저널링은 다른 이들과, 세상과 소통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 아무래도, 디지털 저널링의 최대 강점은 나의 글 또는 다른 사람들의 글이 서로 공유되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점인 것 같다.
초기에, 대표적인 오프라인 행위인 손글씨 저널링에 관한 글을 쓰면서, 그것을 다시 정돈하여 온라인 플랫폼에 업로드하면서 내가 하는 두 가지 행위가 - 손글씨 저널링과 디지털 저널링이 - 혹시 서로 상치되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활동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디지털 디톡스를 염두하고 호기롭게 시작한 손글씨 저널링은 온라인과는 연결될 수 없는 비가상적 현실 체험이다. 특히 손글씨 저널링하는 시간은 펜으로 노트에 한 글자씩 꾹꾹 눌러 문자를 만들어가게 되므로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상념에 빠지게 된다. 폰, 랩탑, 태블릿 등 각종 스마트 디지털 기기들과 거리 두기가 자연스러워지는 시간이다. 번잡하고 어수선했던 하루가 차분히 정돈되고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다. 손글씨 저널링을 하면, 온라인 기기에 코와 눈을 고정한 채 끌려다니지 않으니 디지털 노예에서 자유민으로 신분 해방된 기분도 가끔은 든다.
그런데, 디지털 디톡스의 최적이라고 떠들고 다니던 손글씨 저널링 권장의 글을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고 있다. 시작은 내가 하는 손글씨 저널링 활동을 정리도 해보고, 손글씨 저널링에 적어두었던 글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얼마나 지속적으로 할지 스스로 가늠할 수 없었다. 한 달 만에 그만둘지 또는 3개월은 버틸 수 있을지. 그래서 첫 시작할 때 일단 한 달 해보자, 그리고 스스로 점검을 하고 다시 또 한 달해 보자. 대략 세웠던 플랜은 첫 한 달은 해보기. 그다음은 3개월. 다음은 6개월. 이런 식으로 밀고 나가보기였다. 그런데 의외로 온라인 글쓰기 활동을 지속하면서 약간 멈칫했던 것은 그렇게 온라인 글쓰기와 업로드에 맛이 들리자 온라인 글쓰기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상대적으로 오프라인 손글씨 저널링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하루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래서 중간에 약간 갈등이 왔다. 손글씨 저널링 글을 쓰면서 이것을 온라인에 올리는 것이, 그리고 온라인에 글을 쓰다 보니 손글씨 저널링에 할애할 시간이 감소되는 현상을 몸소 겪으면서. 이것이 당초 내가 손글씨 저널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들과 합치되는 것인지 아니면 위배되는 것인지 알쏭해졌다. 스스로 헝클어진 실타래를 만들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납득시킬 필요가 있었다.
내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만들어낸 자기 합리화 논리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로 그것이다. 손글씨 저널링과 디지털 저널링은 그 목적이 애당초 다르다. 손글씨 저널링이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디지털 저널링은 사람들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다. 손글씨 저널링이 자기 정돈, 자기 정화라면 디지털 저널링은 사람들과의 공유와 공감이다.
그다음, 한 단계 더 들어가, 나라는 존재를 들여다보았다. 스스로 들여다 보기에도 사람이란 존재는 참 이상하게 생겨먹었다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부대끼면 혼자이고 싶으면서, 동시에 오롯이 혼자 있으면 다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