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생각 노트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프로젝트 헤일메리』책을 읽고 있었다. 대략 3분의 1 정도 분량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화관으로 가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봤다. 이럴 때는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면 그럴싸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연히 『프로젝트 헤일메리』라는 SF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희한하게 때마침 바로 그 영화가 개봉되었다.라고 글을 시작하는 것이 뭔가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과 영화 개봉이 우연 같은 운명 같은 일치였다는, 꽤 드라마틱하며 효과적인 등장이 될 것 같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나의 상상이었고 사실은 다음과 같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트레일러를 보고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원작 책을 읽기 시작했고, 당초에는 원작 책을 다 읽고 영화를 볼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어 중간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혹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영화가 막을 내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를 다 본 다음에는 보통 출연 배우나 감독, 그리고 원작자의 인터뷰를 찾아보는 편이다. 그런데 원작자 인터뷰 찾아보다가 원작자가 남자임을 알게 되어서 충격 좀 받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원작자를 여자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책을 다시 가만히 살펴보니 분명 원작자 이름은 "앤디 위어"다, 남자 이름이다. 왜 내가 여자로 착각한 것일까. 아마 "앤디"를 "샌디"로 잘못 읽었던 것일까. 하고 자문 자답해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책날개를 다시 펼쳐본다. 거기에 작가 프로필이 새겨져 있다. 그것을 다시 찬찬히 읽어 보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맨 처음 책을 잡아 들었을 때, 앞에 첫 장, 둘째 장 정도 읽다가 다시 앞으로 가서 작가 프로필을 찾아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도 이 작가가 여전히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프로필에서 여자 작가라는 문구를 보았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았다. 여덟 살 때부터 SF 탐독하기 시작하여, 이후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고, 블리자드 '워크래프트 2" 개발에도 참여, 개인 소설을 집필하다가 발표한『마션 The Martian』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2015년 영화화되었고 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프로필의 어느 구석에도 여자라는 언급은 없었다. 왜 내가 착각한 것일까. 생각을 더듬어 보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책의 첫 시작은 주인공인 "내"가 잠에서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여기서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다. "내"가 누구이고 왜 여기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애쓰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런 구조는 대개 읽는 이의 강한 흥미를 돋운다. 주인공인 "나"는 누구이고 도대체 왜 여기에 있을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런 여러 가지 궁금증을 연달아 유발한다. 그리고 주인공 "나"는 남자임이 바로 밝혀진다. 어딘가 이 구조가 낯익었다. 작년엔가 읽었던 어떤 소설에서의 시작과 유사했다. 물론 그 작품은 SF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작품도 주인공인 "내"가 잠에서 깨는 것으로 시작하고, 기억이 일부 손상되었고, "내"가 누구이고 왜 여기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쓴다. 그 작품에서의 주인공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고 남자였다. 거의 남자는 반신불구인 상태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작품을 쓴 작가는 여자였다. 인상이 깊게 남은 것은 여자 작가가 교통사고로 기억을 상실하고 반신불구가 된 남자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남자에 대한 심리나 행동 묘사가 상당히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그 작품과 이 소설의 도입부의 유사성 때문에 나도 모르게 『프로젝트 헤일메리』작가가 여자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확정 지어버렸던 것 같다. 한 번 그렇게 뇌에 특정 지워지니까 작가 프로필을 읽으면서, 작가 이름을 읽으면서도 이 작가는 여자라는 고정관념으로 기억하게 된 것 같다. 한번 뇌에 특정 빛깔로 생각이 입력되면 그 입력된 특정 빛깔로 세상을 보고 다른 것들을 그에 맞추어 해석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실제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말이다.
작가를 잘 모르고 있었기에 작가 이름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든 것은 아니었다.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사실 예고편을 보고서는 "아. 이건 꼭 봐야 해, " 뭐 그런 마음까지 든 것은 아니었다. 우주로부터 온 어떤 불가항력적인 영향으로 지구가 폐허가 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주인공이 얼떨결에 발탁되어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아주 여러 번 닳고 닳을 정도로, 듣고 보고한 지구멸망-저지-구원이라는 기본 틀의 스토리다. 그러면 남는 것은 주인공 역할을 한 남자 배우인데. 내가 이 영화에서 주연 역할을 한 남자 배우에 대해 그다지 특별한 선호가 있는 편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비호감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에 이 배우 보러 이 영화는 꼭 봐야겠어. 이런 정도의 마음이 생겼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생각해 보니, 결국 이 책을 읽기로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 소개를 잠깐 보다가 이 영화가 소설 원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책을 먼저 좀 읽고 그다음에 영화를 읽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책을 다 읽은 상태는 아니어서 찜찜했지만 - 원래 책을 읽고 영화를 관람하는 순서가 왠지 더 바람직할 것 같아서 - 일단 영화를 먼저 보기로 했다. 이 책도 총 691쪽에 달하니 분량 면에서 읽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영화가 스크린에서 내려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략 168쪽까지만 읽고 영화를 보러 간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전개는 책과 동일하게 시작한다. 주인공이 기억상실 상태에서 잠에서 꺠어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영화의 전개가 매우 빠르다. 허기사 600쪽이 넘는 이야기를 약 2시간 30분 이내로 압축하려니 그럴 수밖에. 지구가 위기에 빠지는 일은 흔한 SF 설정이기는 하지만 그 원인이 꽤 재밌다. 태양빛을 조금씩 빨아먹는 외계생명체로 인해, 지구를 비추는 태양빛이 점점 줄어들어 지구에 붙어살고 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존이 위태롭게 된다. 그런데 그 외계생명체가 엄청난 괴물이 아니라 박테리아 같은 아주 미세한 단세포 생물들인 것이다. 그 생물들이 태양빛을 영양분으로 빨아먹고, 또 그것을 에너지 삼아 뒤로 분출하면서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서 금성까지 기다란 띠를 이루어 이동한다. 보통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생명체는 어마 무시한 비행접시를 타고 다니는, 눈꼬리가 하늘로 치켜 올라간, 분노 지수가 높은 볼썽사납게 생긴 물감 칠한 피부색의, 인간과 유사한 체형을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나름대로 우주적 차원의 공격본능으로 충만한 파충류로 분류될만한 흉측한 외모의 생물체이거나 그랬는데, 여기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단세포 작은 미생물들이다. 이건 꽤 괜찮은 신박한 아이디어 같다. 태양빛을 영양분으로 빨아먹는 단세포 생명체. 이 작은 박테리아처럼 생긴 것들이 태양빛을 먹으면 먹을수록 지구로 쏟아지던 태양에너지가 줄어들어 지구가 황폐화되고 생물들이 생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실제 그런 생명체가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 아직은 발견이 안되었을 것 같은데, 혹시나 그와 같은 외계생명체가 이전에 정말로 발견되었는데 강대국 정부와 정보기관에서 전지구적인 혼란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 그 사실을 애써 숨기고 있을까? 그런 생각도 얼핏 해본다 - 태양빛을 생명 유지의 영양분으로 삼는 외계생명체, 더구나 그 생명체가 미세한 단세포 생물일 것이라는 상상은 매우 충분히 그럴싸해 보인다. 실제로 인간을 포함하여 지구상의 다수 생물들이 거의 태양빛이 있어서 그 영양분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말이 되어 보이는 꽤 재밌는 설정이다.
그런데, 주인공인 중학교 과학선생님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를 너머 다른 태양을 찾아 떠나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어느 국가의 중학교 과학선생님보다는 우선적으로 각 국가에서 다년간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정예 과학자들이 탑승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드는데. 작가도 아마 그 부분 고심을 많이 한 것 같다. 몇 가지 장치를 통해서 그런 의문을 타개할 개연성을 조성한다. 이 중학교 과학선생님이 과거 쓴 논문이 물 입자가 없는 외계 생명체에 관한 가설이었고 그래서 이 새로운 형태의 외계생명체 출현과 맞물려 범세계적 지구 구원 프로젝트에 긴급 소환된다. 이 채집한 단세포 생명체에 대한 조사와 실험을 통해 그 정체를 밝혀내는데, 사실 이 주인공의 임무는 거기까지이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면 소설이 안되고 영화가 안되니까,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별로 가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우주선에 다른 정예 요원들과 함께 탑승하는 또 다른 개연성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재밌는 장면은 결국 지구를 떠나는 우주선에 그를 탑승시키려 하자 - 그런데 문제는 그 우주선의 동력은 편도까지 만이다. 지구로 되돌아 올 연료는 부족한 상황이다.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한 후 거기서 생을 마쳐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 고심의 고심을 거듭한 그는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마침내 자신의 결심을 이 프로젝트의 리더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지구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편도 우주선에 탑승할 용기, 나는 그럴 용기가 없어서 못하겠다고. 나는 이 대사에 깊이 감동받았다. 보통 지구 멸망이란 배경을 둔,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대부분 주인공은 깊게 고민하는 척하지만 다음 순간, 매우 빠르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모든 인류와 자신의 가족, 사랑하는 이들을 구한다는 높고 깊은 사명감, 인류애와 영웅의식을 가지고 결연한 표정으로 죽음을 불사하는 임무에 기꺼이 숭고하게 임한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프로젝트 요원들이 그에게 수면주사를 놓아 강제로 우주선에 태우려 하자 문을 박차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결국 요원들이 그를 바닥에 붙들어 눕히고 수면주사를 강력하게 어깨에 주입한다. 그는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편도행 우주선 안에 이미 탑승된 상태다. 아주 설득력 있고 충분히 이해와 공감이 가는 명장면이다. 영웅적이지 않다. 그래서, 인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