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그리는 한의사

퇴근 후 웹툰학원

by 지훈

위 그림은 나의 창작품은 아니다. 기존에 있는 밑그림 윤곽선이 그려진 캐릭터 위에 그 얼굴, 머리, 팔, 어깨의 윤곽선을 따라서, 윤곽을 다시 그리고 그 안에 색상들을 칠한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페인트"라는 기능으로 각 영역을 색상을 부어서 칠하지 않고 - 페인트 기능을 사용하면 어떤 윤곽선 내 영역에 동일한 색을 한꺼번에 순간적으로 넣어 채울 수 있다 - "붓"을 사용하여 개별로 색상을 조금씩 칠해서 채워본 것이다. 그래서, 중간에 색상과 윤곽선 사이에 약간 색상이 칠해지지 않은 하얀 공간 틈들이 보인다.




수업을 듣기 전에 수강생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들었던 것 같다. 거의 초, 중, 고등학생 또는 20대 초반 청년층이다. 그들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차분하게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 손으로는 디지털 펜을 쥐고 움직거리고 다른 손으로는 키보드 단축키를 딸깍거리며 쉴 새 없이 만화, 웹툰, 캐릭터와 배경 묘사를 그리고 있었다.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대부분 1시간 이상씩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아무도 서로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는 분위기에서, 나 스스로 나서서 갑자기 대화를 시도할 만큼의 그 장소에 오래 굳혀진 분위기를 깰 무모함이 내겐 있지 않다.




와중에, 웹툰 강사는 내게 나와 같이 직장인 중에서 웹툰 그리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다. 인근 회사에 다니는 분 - 30대 여자 사무직 직장인 - 이 있었다고 하는데, 전문적으로 웹툰 작가가 되겠다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고 평소 웹툰을 좋아해서 취미 삼아 직접 그려보고 싶어서 온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다른 지역 지사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발길이 끊겼다고 했다. 그리고, 좀 색다른 경우는 한의사 한 분이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한의사가 왜?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긴 했지만, 남들 보기에는 나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 50대 남자 한의사는 아주 열심히, 빠짐없이 학원 수강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의학 지식과 환자, 고객들을 만나면서 치료한 사례들을 직접 웹툰 또는 만화로 그려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꽤 명확한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학과 관련한 만화나 웹툰이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보통은 이런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만화의 경우, 그 내용을 저술한 사람이 있고, 그 시나리오에 기반해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는 따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한의사가 직접 본인이 겪은 일을 웹툰 또는 만화로 그린다면, 그것이 가능하다면 꽤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한의사가 온라인 웹툰을 만들려는 것인지 아니면 도서형 만화책을 만들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궁금은 하지만, 한참 자신의 작업에 몰입하고 있는 분에게 갑자기, 느닷없이 직접 물어보기에는 쑥스럽기도 하고 용기도 나지 않고 해서. 그래도 너무 궁금한 김에,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 그의 자리를 옆을 지나가면서 슬쩍 보니까 모니터에는 세로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직사각형 그림 바탕 화면이 보였다. 모바일 환경에서 위아래로 스크롤하여 보는 길게 나열된 웹툰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확실히 웹툰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흠. "웹툰 그리는 한의사"라---. "웹툰"과 "한의사"의 조합. 나름 흥미를 돋우는 문구인 것 같다. "웹툰 그리는 웹툰 작가"는 당연하지 않은가. "한약 만드는 한의사"도 빤하다. 그런데 "웹툰 그리는 한의사"라. 의외의 단어 조합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전문직 한의사가 웹툰을 그린다. 마케팅 본능을 자극시키는 문구들이다.


그래서 유심히 어깨너머로 그가 그린 그림을 보게 되었는데, 이런! 사실 그의 그림 솜씨가 아주 뛰어나지는 않아 보인다. 상대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적어도 나 보다 수개월, 아니 작년부터 이 학원에 다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최소한 일정 수준 정도의 등장인물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 얼핏 들여다본 그림 속 캐릭터들의 얼굴이나 몸은 너무 어설퍼 보였다. 그러니까 몸동작은 둘째치고 캐릭터들의 뚜렷해야 할 눈, 코, 입이 잘 보이지 않았다. 괜찮은 것일까?




의문스러웠는데, 웹툰 작가는 내게 이런 설명을 해주었다. 작가도 이 한의사의 그림 실력이 썩 뛰어나지는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주목하는 것은 한의사가 가지고 있는 직업 전문성이었다. 자기 직업의 전문 분야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 직접 체험한 경험담, 그리고 한의사 본인이 직접 웹툰을 그려 보인다는 점이 강점이라는 것이다. 독자들이 세밀하고 뛰어난 그림 솜씨로 그려진 그림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쩌면 그림 자체 보다도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더 강력하다는 것이다. 한의사의 웹툰 실력으로 다소 부자연스럽고 단순한 캐릭터 이미지나 동작이 나오더라도, 한의사가 직접 그렸다는 점에서 일단 독자들은 대강 이해하고 간다는 것이다. 한의사가 직접 그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가 또 중요한 것이다. 그림이 매끄럽게 나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소구력은 있다는 것이었다.









월요일 연재
이전 05화첫 윤곽선 그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