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었을까?
손글씨 저널링을 하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좀 더 몰입하여 생각하게 된다. 평소에는 잊고 지냈던, 내가 누구이며,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잘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좀 더 본질적인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하루하루의 출근과 업무와 퇴근을 반복하다 보면 생각도 하지 않게 되는 것들이다. 손글씨 저널링을 통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일지도 모를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기억하기로는 내 경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예전에도 이런 질문들에 항상, 자주, 많이 사로잡혔던 것 같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이며, 왜 여기 지구라고 부르는 행성에서, 그것도 하루살이나 민들레도 아니고 사람으로 콕 집어서 태어났는지 등등에 대한 의문들 말이다.
이 경우 자칫 스스로 만들어낸 질문의 범위가 은하계를 넘어서, 범우주적 광대무변한 스케일로 확장되려고 하는데. 이런 때는 정신줄을 좀 단단히 붙잡을 필요가 있다. 숨을 골라 봐야 한다. 간혹, 업무에 절어서 퇴근할 때 몽롱한 머리에 찬바람을 맞는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이 일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뭉클 올라온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면 될 일인데 그런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잠깐 뒤돌아 보면 여러 의문부호들만 길바닥에 뒹굴고 있다. 녹색불로 바뀌어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가끔은 남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30년 경찰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퇴직을 맞이한 경찰관이 있었다. 퇴직을 앞둔 몇 년 전부터 은퇴 이후 제3의 인생을 설계하려고 나름 노력을 숱하게 했다. 여러 가지 교육도 받아보고 자격증 시험에 도전도 해 보았다. 대부분 별다른 소득 없이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태에서 본인이 해볼 수 있는 시도들을 거의 모두 해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그에게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것이 무엇이었지? 내가 어렸을 때 정말 좋아하던 것을 다시 하면 신나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찾아낸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빵! 이 분은 어렸을 때, 빵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빵과 함께라면 언제나 행복했다. 그래서 결심한다. 제빵사가 되어서 베이커리 전문점을 차리기로. 전문학원에 등록하여 제빵을 배우기 시작하고 심지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는 업소용 전문 제빵기를 구입하기도 한다. 식구들의 거센 반대를 끝내 극복하고 거실에 반짝반짝 육중한 제빵기를 설치하기까지 한다. 평일 저녁과 주말은 오로지 제빵에만 열과 성을 쏟아부었다. 대단한 열정이었다. 더구나 제빵학원의 수강생들은 대부분 본인 자녀 또래 연령층이었는데 말이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과정을 이수했다. 이 정도면 하늘도 감동해야 하는데... 결과는? 결국 그는 깨달았다. 본인이 만들었지만 자기가 입을 대봐도 빵이 정말 맛이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본인이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던 것은 빵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빵을 먹는 것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