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의 스타트업 투자 이야기 꾸러미
본격적인 글의 연재에 무엇을 첫 번째 주제로 삼을까 여러 고민을 했습니다. 스타트업 산업 관련 동향이나 글로벌 뉴스 등을 다룰까도 생각했고, 투자한 기업들을 지금부터 하나씩 등장시켜서 그들의 이야기를 해볼까도 생각했는데, 처음을 여는 이야기로는 다소 지엽적인 느낌이 있어서, 일단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엔젤투자자와 벤처캐피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생각보다 오해도 많고, 잘 모르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간혹 투자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진행이 되다가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간혹 발생하거든요 ...
엔젤투자자와 벤처캐피탈이 뭐가 다를까요? 생각보다 굉장히 간단합니다.
엔젤투자자는 자기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이고, 벤처캐피탈은 남의 돈을 투자하는 집단입니다.
이보다 명확한 정의는 없습니다. 모든 차이점이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엔젤투자자는 자기 돈을 투자하니까,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어떤 투자자는 사람을 보고 굉장히 오래 기다릴 수 있다는 각오로 아주 초기에 투자를 해두고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투자자는 돈을 빨리 회수하는 것을 중시하면서 사채를 뿌리듯이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엔젤투자자를 만난다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단순히 돈으로만 판단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에 비해, 벤처캐피탈은 남의 돈을 투자하기 때문에 그만큼 엄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돈을 가진 쩐주(약간 속어로 썼지만, 돈을 굴려달라고 위탁을 하는 파트너로 LP라고 합니다)의 성향에 따라서 그 목적에 맞게 돈을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국민연금의 돈을 굴린다고 했을 때,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인 돈은 손실의 위험이 크다면 안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LP로서 그와 관련한 조항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뿐이 아니죠. LP의 돈은 보통 기한이 설정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출자를 하고, 5~10년 사이의 어떤 기간을 설정하는데, 최종 마감이 되는 시기가 있고 이 때까지의 수익률이 해당 벤처캐피탈의 수익률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정해진 시간 내에 M&A를 하든, IPO를 하든, 지분 매각을 하든 다양한 방법으로 회수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투자계약을 할 때에도 자금회수를 위한 다양한 제약사항을 넣게 됩니다. 벤처캐피탈들이 계약을 할 때 흔히 집어넣는 이런 장치에 대해서는 향후 기회가 있을 때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여튼 이렇게 기한을 설정하고 돈을 굴려서 수익률이 잘 나와야 향후에 다시 좋은 LP들을 만나서 새로운 투자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렇게 잘 굴려야 수수료를 많이 받을 수 있고, 수수료로 벤처캐피탈의 파트너들이나 직원들의 월급도 주고, 수익분배도 하고 그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투자를 할 때의 태도도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초기에 투자를 하되 혹시라도 잘 안되면 투자자금을 날릴 각오를 합니다. 그리고, 굉장히 오래 기다릴 각오를 합니다. 그게 엔젤투자자의 기본이라고 믿는 사람이죠. 그렇기 때문에, 투자를 받을 사람이 단지 돈을 보고 받는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투자자에게 돌려 주기 위해 노력을 할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한, 갑자기 크게 성장할 곳보다는 오래 살아남아서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그런 곳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단계에 따라서 회사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나, 투자절차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스타트업 기업을 설립하는 단계에서 투자하는 경우에는 회사가치를 결정하고 바로 공동창업 지분으로 투자합니다. 이 경우 바로 주주가 되기는 하지만, 투자자로서 뭔가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계약서에 그런 부분이 명시되는 것이 없으니까요 ... 법인설립이 되어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구주를 인수하거나, 신주를 합의된 가치에 맞추어서 유상증자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하게 되는데, 이 때에도 대체로 보통주를 인수하게 되고, 스타트업 경영자들에게 특별한 옵션이나 제약을 가하는 계약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만큼 위험도 감수하고, 초기에 투자하는 만큼, 스타트업 기업의 가치를 너무 높게 잡는다면 투자를 포기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모 벤처캐피탈 등에서 이 정도 가치로 평가가 나온다" 면서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럼 거기서 투자를 받으시지요" 하고 떠나는 것이죠. 적어도 수 개월 이후 후속 투자자에게 제시하는 기업가치보다 2배 정도의 프리미엄이 없다면 엔젤투자자로서 투자하는 것이 지나치게 위험한 선택일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지나치게 돈을 위주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엔젤투자자를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비록 회사가치는 더 인정해 주더라도, 벤처캐피탈에서 투자를 할 때에는 당연히 다양한 안전장치를 겁니다. 우선주로 투자를 하게 되고, 회수와 관련한 다양한 조항들이 들어가고,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 향후 추가 투자를 받을 때에 경영진들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도록 하는 부분, 스타트업 경영진들에 대한 책임과 관련한 내용 등이 들어가지요. 흔히 이런 조항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창업자들이 있는데, 앞에 설명한 바와 같이 벤처캐피탈이 돌아가는 방식을 안다면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엔젤투자 문화도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었고, 벤처캐피탈도 사실은 금융기관에 가깝게 성장을 해왔던 역사가 있어서 투자라는 것에 대해 잘못된 오해가 많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 고리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엔젤투자자와 벤처캐피탈에 대해서 스타트업들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탈은 그냥 돈을 뿌리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