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기심이 많은 아이를 둬서 피곤한 아버지가 있었다. 잠깐 동네를 산책하는 와중에도 삼백 오십 일곱 번 을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아이와 더 이상 세상 일련의 모습들에 한, 두 번의 놀라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아버지의 대화는 가까이 걷고 있어도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손끝만큼의 거리로 떨어져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다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물어봐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자 아이는 놀라움의 바닷가에 앉아 모래처럼 알알이 부서지는 물음표들을 가만히 토닥이며 모래장난을 시작했다. 던진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택한다. 대답을 원하지 않자 많은 것들이 신기하리만치 쉬워지고 말았다. 쉬워진 세상은 딱히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는 것이 되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을 평화로 택했다면 그것은 썩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믿고 느끼는 대로 내리는 결론이란 어쨌거나 편리한 것이고 삶의 괴로움이라는 것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 하는 것은 대개 나와 마주하는 타인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사전에서 재조명된 단어들은 곧 세상의 의도와 멀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그 아이를 가엾이 여기거나 무시해버렸다. 중요하지 않은 인물, 흥미롭지 않은 인간, 굳이 시간을 할애할 필요 없는 존재쯤의 어딘가에 데려다 두고는 이내 잊어버렸다.
2 .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전달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든 적이 없었다. 꽤 마음에 들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해도 누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 나는 몇 번의 실패사례를 기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심지어 나 역시도 오늘 눈이 마주치고 인사를 건네고 웃으며 대화를 주고 받았던 대부분의 사람을, 나는 잊었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친절하고 상냥했다. 모두가 친절한 세상에서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것을 한시라도 잊는 순간엔 십중팔구 상처받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심으로 웃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진심으로 당신을 웃게 하고 싶다는 마음은 더더욱 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전쟁이 없는 세상을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배려와 존중으로 가득 찬 세상을 꿈꾼다는 얘기와 다를 바가 없는 말이다. 진실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동시에 같은 곳에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어디까지 내보이고 어디까지 감추어야 할 지를 모르거나 혹은 그 맛을 그 냄새를 다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3.
그날, 나는 당신의 추측보다 훨씬 더 아팠다. 나는 배려한답시고 참아냈다. 그러나 당신은 참는 것을 곧 문제에 대한 긍정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영원히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당신은 한번도 나의 불행을 바라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당신이 나의 불행을 원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변이 없는 한 이 관계는 회복의 기회를 마련하기 힘들 것이다.
4 .
몇 달 전부터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었다. 오늘도 나는 그 사람을 마주하고 앉아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호감이라는 것은 결국 내 안의 불안을, 불신을 앞서지 못하는 선에서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만한 인간관계란 묵직한 외로움을 동반한다.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거짓과 연기에 능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현실을 오늘도 나는 마주한다. 결국 외로운 것은 혼자여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