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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지 말고, 배워서 당당하게 써

복무 한 번 쓰려다 눈치 100번 봤던 이야기

by 지훈쌤TV

신규 교사 시절, 가장 어렵고 부담스러웠던 일 중 하나는 ‘복무를 신청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땐 복무를 사용하려면 무조건 교무실에 가서 구두로 사유를 설명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잠깐의 외출이나 조퇴조차도 당당히 말하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특히 금요일처럼 퇴근길이 막히는 날이면 장거리 운전을 피하고 싶어 조퇴를 쓰곤 했는데, 그때마다 교무실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조퇴 사유를 이야기할 때면, 저를 빤히 바라보던 관리자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요즘 젊은 교사들은 조퇴도 맡겨 놓듯이 하더라.”

“그런 사유로 조퇴를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런 말들을 들으면 순간 마음이 움츠러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겐 별일 아닌 말일 수 있어도 그땐 한 마디 한 마디가 상처였고, ‘혹시 내가 민폐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자책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던 겨울, 광주에는 대설주의보 예보가 떴고 가족들로부터 장거리 운전을 걱정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걱정이 된 저는 조퇴를 신청하기 위해 조심스레 교무실로 향했습니다.


“오늘 눈 예보가 있어서, 차가 막히기 전에 조퇴를 쓰고 싶습니다.”


그러자 교감선생님은 창밖을 한번 내다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내 눈에는 눈이 안 보이는데?”


당황스러웠지만, 차분히 제 생각을 전했습니다.


“지금은 눈이 오지 않지만, 뉴스에 따르면 곧 강설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정시 퇴근 시각에 맞춰 출발하면 퇴근길이 너무 위험할 수 있어 걱정돼서 조퇴를 쓰는 건데, 이 정도면 정당한 사유가 되지 않을까요?”


제 말을 들으시던 교감선생님은 조금 당황하셨는지 헛기침을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조퇴를 내는 데 이렇게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앞으로는 그냥 상신하고 가도 될 것 같네.”


그날 이후, 저는 조퇴를 낼 때 교무실에 가서 구두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전자결재를 올리고, 결재가 나지 않았을 경우에만 쪽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조퇴나 외출은 전자결재로 상신하고 승인을 받으면 되는 절차이며, 별도의 구두 설명이나 대면 보고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요.


복무에 대해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괜한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슬기로운 교사 생활을 위해서는 복무에 대한 ‘공부’도 필요합니다.

정당한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교직 10년이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깨닫습니다.


누군가에겐 복무 신청이 가볍고 쉬운 일일 수 있지만, 신규 교사에게는 조퇴 한 번에도 큰 용기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복무는 교사의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그 권리를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10년 전의 저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복무 때문에 혼자 속앓이 하지 마. 그건 네가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야. 누구에게 눈치 보지 말고, 배워가면서, 당당하게 써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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