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갓 졸업했을 무렵이었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백만 원이 넘는 돈이 내 수중에 들어왔을 때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첫 월급을 받고 내가 느낀 건 짜릿하다거나 뿌듯함, 성취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를 살아갈 내 미래에 대한 책임 같은 것. 그 이상의 짜릿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월급의 7~80%를 모으고 대학생 때보다 더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하루 종일을 병원에서 일하며 나의 풋풋한 20대 청춘을 병원이라는 곳에 바치는 것이 너무 서글펐다.
그 서글픔을 위로하기엔 나의 월급은 귀여운 수준이기도 했고.
지금이야 동기부여와 목표가 우리 삶을 건강하게 이끌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때는 내 삶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온통 암흑처럼 깜깜했다.
하루는 택시를 탔다.
사회초년생은 회식자리를 피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그런 관행이 남아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그 관행을 거스르면서 눈밖에 나기 싫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회식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속 초침도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열두 시가 넘으면 붙는 택시비 할증 때문이었다.
할증이 붙기 시작하면 택시비는 배로 뛴다. 갑자기 그게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고작 몇천 원 더 내겠지만 그때 그 돈을 생각하니,
'아직 치아교정비도 다 못 갚았는데.. 이번 달은 정말 아껴 써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이 주마등을 스쳐 지나갔다.
결국 열한 시 반을 넘어서야 간신히 자리에서 나오게 됐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 집에 가는 내내 택시 안 미터기를 연신 바라봤다.
미터기가 올라가며 금액이 오를 때마다 마음이 철렁했다.
그런 내 모습을 알기라도 하시는 듯 기사님은 한 번씩 흘끔거리며 나를 바라보셨다.
이런 불편한 분위기가 싫었다. 불편한 상황을 만든 내가 너무 싫었다.
결국 택시는 집 앞에 도착했고 내리려는 찰나의 순간 난 용기 내어 기사님께 말을 건넸다.
"죄송해요. 제가 돈을 아끼느라.. 불편하셨을 텐데... 조심히 가세요."
그제야 기사님이 뒤돌아보시고는 머쓱한 듯 답을 하셨다.
"아이, 아가씨. 죄송할 것두 많네. 나는 내 일 하는 거고. 아가씨가 참 알뜰하네.
요 미터기가 뭐라구 그렇게 마음을 졸여 마음을. 신경 쓰지 말고 아가씨 갈 길 가는 게 제일이야."
이후로 나는 택시를 타면 미터기를 잘 보지 않으려 하는 습관이 생겼다.
자꾸만 바라볼수록 나도 모르게 마음이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기 때문에.
인생도 그렇다.
내 안의 엄격한 잣대로 나를 재단 해갈수록 우리는 여유를 잃고 불편함을 만든다.
그래서 내 인생에는 미터기가 없다.
몇 미터를 끝없이 달려간다 해도 미터기를 보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