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가을, 제주
제주도를 가고 싶어 했던 건 이번해 5월부터였다.
제주도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보면,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와 풀들을 보면 조금은 삶의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조용하게 날 맞아주는 제주도를 꽤 오랫동안 상상했다. 아끼는 만큼 더 신중해져 버린 탓이겠지. 제주도를 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그 몇 달 동안 스카이스캐너에서 제주도 항공권을 찾아보는 것에 괜한 작은 설렘을 느끼고 상상을 하다 창을 닫고는 했다. 1시간 10분. 그렇게 멀지도 않은 제주도는 나에게 적잖이 차가운 바람이 넘실대는 가을, 11월에 찾아왔다.
도착하자마자 바다로 갔다. 저녁노을이 지는 바다를 놓칠까 부랴부랴. 짐가방을 멘 어깨가 아파오는지도 모르고 뛰었다. 바다가 가까워질수록 이 마음속 울렁임이 뛰어서인지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울렁임이 꽤 싫지는 않았다.
눈 앞에 바다가 놓여졌다. 켜켜이 쌓여있는 이호테우 해변의 파도를 보니 괜스레 울컥했다. 아직 가시지 않은 노을이 고마웠고 그 아래 넘실대는 파도가 또 고마웠다. 바람이 꽤나 시렸다. 제주도의 가을은 그래도 조금은 따뜻할 줄 알았는데. 베이지색 캐시미어 목도리를 챙길까 말까 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바다를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더 가깝고 싶다. 가까이 가서 파도를 만들고 이내 깨뜨리는 너를 봐야, 온전히 너를 보는 것 같으니. 어둑어둑해진 오후 5시 30분의 바다를 향해 알 수 없이 공허해지는 눈동자의 작은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메우고 채우고 싶은 마음에 더욱 가까이 걸었다. 한 발 한 발 딛을수록 모래가 움푹움푹 파였다. 괜히 뒤를 돌아봤다. 나의 흔적이 하나씩 만들어졌다. 내 가벼운 발걸음이 우직한 땅에 모양을 만들어갔다.
다시 새까맣고 빛나는 바다로 향했다. 노을이 금세 사라지고 어두워져 버린 탓에 발을 헛디디였다. 물웅덩이에 운동화 앞 코를 빠뜨렸다. 양말까지 금세 시원해졌다. 운동화에 제주바다 냄새가 나겠다 싶어 나름 또 좋다 생각했다.
가까이에서 본 바다는 요란스럽게 파도를 만들지 않았다. 소리는 웅장했으나 고요했다. 무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열심히 움직이며 존재를 끊임없이 자각하는 바다의 움직임이 숭고하다 느껴졌다. 어두컴컴해지니 하늘도 바다, 바다도 하늘 같았다. 맞닿아 있는 경계선이 어둠에 희미해질수록 바다는 더 커졌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나는 꽤나 작아 보였다. 아니, 작았다.
삶은 강과 같다 했다. 우리는 시간 속에 하염없이 흐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흐르지 못할 때 괴로웠다. 때로는 현재를 사는 나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낀 이도 저도 못 가는, 강 사이 돌무덤에 머무르게 돼버린 이파리 같다 생각했다. 거스를 수 없는 과거가 통탄스럽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미래가 정말 죽도록 밉기도 했다. 현재를 살면 미래가 오고 과거가 나를 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현재의 나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이파리 같은. 그렇기에 현재를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리고 바다가 보고 싶었다. 수없이 토해내고 이내 받아내는 파도를, 잔잔하게 담겨있는 듯 하지만 잘게 흐르고 있는 바닷물을. 주어진 박자로 움직여내는 무표정을 짓고 있는 바다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욱,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