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배낭여행일기4) 아, 오아시스!

라마에서 이카로 넘어가다

by dearmycanada


입에서 단내가 날 것 같다. 페루, 적어도 리마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주문을 할 때도, 길을 물어볼 때도 바디랭귀지 말고는 근 며칠간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입을 통 열지 않으니,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다. 이번 페루 여행이 유난히 외롭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아침 일찍 와카치나 사막 투어에 가기 위해서 집 앞을 나섰다. 집 바로 앞에 나를 마중 나온 가이드가 있다. 차에 올라타니 그가 나를 보며 묻는다.


"You, speak, Spenish?"

- 당신 스페인어 할 줄 아시나요?


"No, I speak only English."

-아니요, 영어만 할 줄 아는데요.


"Oh, no..."

-헐


저렇게 당황하시다니. 후회가 된다. 나는 그 많은 멕시칸 친구들을 두고, 왜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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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로 향하는 길


와카치나 사막으로 가려면 수도인 리마에서 이카로 넘어가야 한다. 길쭉한 나라답게 이동이 편리하도록 버스가 잘 되어 있다. 2층 버스인 데다가 영화를 볼 수 있는 화면부터 식사, 탑승하는 승무원까지 있다. 리마에서 이카는 버스로 약 3 ~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어제 늦게 잠드는 바람에 피곤했는데도 경치를 보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관광지로써 잘 다듬어진 리마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판자로 엉성하게 지어진 집들이 보인다. 리마나 바랑코에선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어디에나 이면은 존재한다는 것이 와 닿는 순간이다.











보자마자 여름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알라딘이 떠오른다. 나름 여행에는 꽤 일가견이 있는 편인데, 사막의 오아시스라니, 처음 보는 광경이다. 물은 생각보다 더럽지만 뚱뚱한 나무들이 참 귀엽다. 황량한 모래사막과 물과 나무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순간이 살면서 몇 번이나 될까. 감사기도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옷은 딱 2벌을 가지고 왔으면서 카메라는 4개나 가져왔다. 필름 카메라, 디지털카메라, 핸드폰 그리고 눈. 번갈아가며 셔터를 누르는데 눈이 부셔 어떻게 나오는지 제대로 볼 수가 없어도, 뭐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눈에 담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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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00703_085914245_11.jpg 오아시스

인생에서 단 몇 시간만 볼 수 있는 광경이라 선글라스에 아슬아슬하게 햇빛을 가린 채로 한참이나 오아시스를 구경했다. 남, 녀가 커플로 앉아 보트를 젓는 모습은 한강 오리배를 연상케 한다. 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7살 남짓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기 덩치보다 큰 아이스박스를 들고 와 나에게 말을 건다.


"Water, water."

- 물 사세요, 물.


내 옆에 있던 유럽계 배낭객은 정말 목이 말랐던 건지, 아니면 아이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었던 건지 물 한 통을 사버린다. 약 한 시간 동안의 오아시스 구경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사막에서 버기카를 타기 위해 동네 슈퍼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서글서글한 인상의 한국 남자분이 인사를 건넨다. 한국 사람들이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인사를 먼저 할 줄을 전혀 몰랐는데 먼저 건네준 인사가 반갑다.



KakaoTalk_20200703_085914245_15.jpg 버기 투어 하러 가는 길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성분은 은원 씨, 옆에서 역시 나를 반기며 웃어주시는 영경 씨의 모습 역시 보인다. 예민하고 경계를 많이 하는 내 성격을 단번에 녹여버린다. 두 분의 미소에는 선함 이상의 뭔가가 있다. 나와 동갑인 이 부부는 결혼식을 마치고 남미로 신혼여행을 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남미 국가를 돌고 나서 페루가 마지막 국가라고. 두 분은 이미 페루의 명물 마추픽추를 다녀왔고, 이렇게 나와 와카치나 에서 마주쳤다. 하나님, 우연치고 너무 티 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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