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커리어 노트>를 시작하며
어느새 개발자로 일한 지 8년 차가 되었다. 경력 초반에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몇 년이 지나니 더 많은 걸 배우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다.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영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낯선 영국에서의 취업은 쉽지 않았고, 생각보다 길어진 구직 시기는 고단했다. 이곳에서 외노자 개발자로 살아남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커리어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또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때까지 내가 했던 고민과 그 고민의 끝에 나름대로 찾은 해답을 나누고자 <개발자의 커리어 노트>를 시작한다.
나의 첫 회사는 한국에 있는 IT업계 대기업이었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자랑하는 회사였고, 입사 후 장장 3개월 간의 개발 교육을 받은 후에야 팀에 신입사원으로 투입되었다. 내가 배정받은 팀은 기업용 클라우드 관리 플랫폼을 만드는 팀이었다. 나보다 까마득히 경력이 높은 선배들과 함께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같은 팀에서 3년을 넘게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성장을 멈췄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계기로 대리 직급을 달던 해에 퇴사를 결심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두 번째 회사는 영국의 작은 에듀테크(EduTech) 스타트업이었다. 전 직원이 60명 남짓 되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고, 몇 안 되는 팀원들끼리 서로 도우며 친구처럼 일했다. 직원 수가 적은 스타트업에서는 각자 일당백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는 못 해봤던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었다. 그때까지 만족하며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내 직속 상사를 해고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브런치북 <영국 회사 취업부터 퇴사까지>에 담겨있다). 그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세 번째 회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핀테크 기업이다. 영국 회사지만 미국 본사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미국 기업 문화도 함께 경험하고 있다. 전 직원이 1,500명 정도 되는 중견 기업이다. 이 회사에서는 내가 전에 써보지 않았던 기술 스택을 사용하는데, 덕분에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마저 익숙해질 즈음 팀을 옮겨서 또 한 번 직무에 변화를 주었다.
팀을 옮기거나 이직을 할 때마다 직무가 조금씩 달라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직무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전배나 이직을 선택했다. 워낙 새로운 기술 배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궁금증은 직접 겪어보며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백엔드 개발, 프론트엔드 개발, 풀 스택 개발, 데이터 엔지니어링까지 다양한 직무를 맡았다. 이 정도면 웹 개발자로서 해볼 수 있는 웬만한 직무는 다 경험해 보지 않았나 싶다.
여러 직무를 시도하다 보니 지금까지의 경력은 Specialist보다는 Generalist에 가깝다. Generalist가 되는 것의 장점은 나무보다 숲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Specialist에 비하면 각 분야의 이해도가 깊지는 않지만, 시스템 전체를 골고루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여러 프로젝트에서 요구되는 스킬이다.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방향을 잡으면 되는데, 나의 경우 지금까지는 하나를 깊게 파는 것보다 다양한 일을 해보는 것에 더 흥미가 갔다. 앞으로는 한두 분야를 보다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싶기도 하다.
각기 다른 세 곳의 회사를 거쳐 여러 직무를 맡아오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가끔씩 ‘지금 아는 것들을 몇 년 전에 알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때의 나에게 지금까지 내가 배운 것을 알려줄 수 있다면 그간 겪었던 고생을 조금은 덜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나간 나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그 대신 커리어에 관해 고민하고 있는 다른 개발자들에게 내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고자 한다. 그게 내가 <개발자의 커리어 노트>를 시작하는 이유다.
어느 규모의 회사에 가는 게 좋을까?
어떤 직무가 나에게 가장 잘 맞을까?
원하는 회사에 가기 위해선 뭘 준비해야 할까?
입사하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내 실력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개발자라면 이 매거진을 읽어주길 바란다. 이런 고민을 조금이나마 먼저 했던 개발자로서, 내 나름대로 찾은 해답을 아낌없이 공유할 예정이다. 가장 효과적인 배움은 자신보다 열 걸음 앞서 있는 사람이 아닌 한두 걸음 앞서 있는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이 매거진이 그 한 걸음 앞의 인사이트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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