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없는 나라에서 연애를 시작하는 법
영국에 사는 직장인들은 어디서 인연을 만날까? 직장인들에게 자연스러운 만남, 이른바 ‘자만추’가 어려워진 것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마찬가지다. 비슷한 또래들이 한데 모여 있던 학교와 달리, 직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내 나잇대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설령 있다 해도, 이후에 관계가 지저분해질 가능성을 생각하면 선뜻 다가가기 망설여진다. 게다가 남녀 비율이 맞는 취미생활조차 없다면, 자연스러운 만남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소개팅이 가장 유력한 만남의 창구였다. 내 주변 직장인들만 봐도, 소개팅으로 연인을 만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 또한 한국에서는 소개팅을 나가기도 했고, 친구들을 여럿 소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에는 소개팅 문화가 거의 없다. 사실 한국만큼 소개팅이 주류인 나라는 드물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어떻게 사람을 만날까. 바로 데이팅앱이다. 영국을 비롯한 많은 서양 국가에서는 데이팅앱이 이미 가장 보편적인 만남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데이팅앱은 아직 낯설다. 나도 처음에는 앱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어쩌지? 가벼운 만남만 원하는 사람들밖에 없으면 어떡하지? 혹시라도 범죄의 대상이 되진 않을까?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주변에서 데이팅앱으로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까지 하는 걸 보며, 이런 불안은 조금씩 누그러지고 ‘나도 어쩌면’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래서 주변 앱 경험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조심스럽게, 그러나 제법 당차게, 앱 시장에 발을 들였다.
물론 데이팅앱에 이상한 사람, 가벼운 만남만 추구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느 정도의 필터링은 가능하다. 1차로는 프로필에 올린 사진과 문구를 보고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거른다. 2차로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대화의 결을 보고 한 번 더 거른다. 그렇게 남은 리스트 중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과 데이트를 잡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첫 만남은 반드시 안전한 장소로 정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 최소한 ‘이상한 사람’을 만날 확률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문제는 안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남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데이팅앱에서는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쉽다. 스크롤 몇 번이면 새로운 상대의 프로필을 볼 수 있고, 메시지 몇 통이면 데이트가 성사된다. 그러다 보니 만남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오늘 저녁이면 또 다른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태도로 만남에 임하다 보니, 데이트는 여러 번 하더라도 진지한 인연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나는 솔로>에서 여러 사람을 재며 시간을 끄는 출연자들이 결국 커플을 맺지 못하고 떠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나도 1년 가까이 데이팅앱을 떠돌며 이런 상황을 여럿 겪었다. 메시지를 주고받다 아무 이유 없이 흐지부지되는 건 다반사였고, 데이트까지 가는 것조차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게다가 데이트를 잡았는데 당일에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취소하는 사람, 심지어는 취소 연락조차 하지 않고 막판에 잠수를 탄 사람도 있었다. 데이트 준비를 다 마치고 집을 나서려다 뭔가 느낌이 싸해서 문자를 해봤는데, 그제야 차단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다. 아무리 다시 볼 일이 없는 사이라지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인류애를 잃어 데이팅앱을 한동안 때려치우기도 했다.
어찌저찌 데이트를 나가더라도, 첫 만남에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사진과 실제 분위기가 너무 다르거나, 생각보다 대화가 잘 안 되거나, 사람은 괜찮아 보이지만 그냥 이성적인 호감이 안 생기거나. 그런 경우 나는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기 위해 바로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너무 많았다. 애프터 신청은 하지도 않으면서 애매하게 연락만 이어가는 사람들. 분명 다른 선택지를 열어두고 나를 백업 옵션으로 두려는 게 느껴져서, 이런 사람들과는 나도 미련 없이 연락을 끊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서서히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데이팅앱으로 정말 내 짝을 만날 수 있긴 한 걸까?’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어떻게 괜찮은 인연을 찾는 걸까? ‘
‘나는 애초에 데이팅앱에 안 맞는 사람인 건 아닐까?’
그렇게 데이팅앱에 지쳐갈 때쯤, 그 남자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