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문화 차이는 식탁에서

식성은 달라도 같은 식탁에 앉는다는 것

by 엄지현

우리 커플은 영국에서 만났지만, 둘 다 타지에서 나고 자란 이방인이다. 프랑스에서 온 남자와 한국에서 온 여자. 우리는 생긴 모습도 자라온 환경도 확연히 다르지만, 생각보다 비슷한 면도 많았다. 둘 다 내향인이라 대규모 모임보다는 친한 친구와의 깊은 대화를 더 좋아한다. 하루 종일 밖에서 데이트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영화를 보고, 보드게임을 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게 더 좋다. 술을 즐기지 않고, 대신 달달한 디저트를 즐겨 먹는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것보다는 탁 트인 공원에서 강아지와 놀며 보내는 평온한 시간을 더 선호한다.


이렇게 성향이 비슷하다 보니, 크게 문화 차이를 느끼는 부분이 많진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두드러지게 차이를 느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의 식성 차이다.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 식성으로, 웬만한 한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외국에 오래 살았지만 여전히 한국 음식이 제일 맛있다. 집에서 요리를 할 땐 주로 한식을 해 먹었고, 밖에서는 일식, 중식 등 아시안 음식을 골라 먹는 편이었다. 고추장 양념이 배인 매콤한 닭볶음탕, 묵은지로 만든 김치찌개의 깊은 국물, 짭조름한 고등어조림의 감칠맛은 어느 외국 음식보다도 내 입맛을 저격한다.


그런 나에게 가장 큰 난관은 남자친구의 별난 식성이었다. 일단 매운 음식은 전혀 못 먹는다. 고춧가루를 조금만 넣어도 너무 맵다며 헥헥 거린다. 뭐 이건 어릴 때부터 매운 음식에 노출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여기다가 해산물을 또 안 먹는다. 냄새도 안 당기고, 맛도 자기 입맛에 안 맞는단다. 그리고 보너스로 야채도 몇 가지 빼곤 잘 안 먹는다. 과일도 좋아하는 게 상당히 제한적이다. 내 친구들에게 그의 식성을 설명하면 보통 이렇게 묻는다.


“그럼 도대체 뭘 먹어?”


우리는 데이트할 때 외식보다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해 먹었는데, 강아지 때문에 우리 집에 오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럴 때면 음식 메뉴를 고르는 건 주로 나의 몫이었다. 요리야 혼자서도 자주 해 먹으니 어렵진 않았는데, 우리 둘의 식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메뉴를 고르는 게 난관이었다. 일단 한식에서 매운 음식을 빼면 옵션의 절반이 날아가고, 거기서 또 해물이 빠지고, 야채 위주의 음식은 또 탈락된다. 그렇게 해서 선별한 음식은 아래와 같다.


불고기, 안동찜닭, 간장국수 등 간장 베이스 요리

된장찌개, 된장고기볶음 등 된장 베이스 요리

해물 없는 파전, 야채를 최소화 한 잡채, 만두, 김밥


여기다가 남자친구가 잘 만드는 양식 메뉴를 더해본다.


라자냐, 각종 파스타 등 이탈리안 요리

스테이크, 로스트 치킨 등 고기 요리

(그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채소인) 토마토 샐러드, 수프 등 토마토 베이스 요리


선택의 폭은 좁았지만, 우리는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갔다. 그리고 여기서 메뉴를 더 확장하기 위해 한식 외의 요리도 시도해 봤다. 짭짤하고 달달한 태국 팟타이, 돼지고기에 야채를 살짝 섞은 베트남 스프링롤, 맵지 않은 일본식 카레 등. 그를 위한 시도였지만, 나에게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내가 한식 말고 이런 요리도 할 수 있구나. 그 또한 나를 위해 향신료가 더 강한 요리를 시도했다. 남미식 만두 엠파나다, 멕시코 타코와 파히타 등, 외국 식당에서만 먹던 음식들을 집에서 먹게 되었다. 그리고 한식 외에도 좋아하는 음식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물론 식성이 완벽하게 맞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었다. 아플 때 나는 그에게 닭죽을 해주고, 그는 나에게 토마토 수프를 해준다. 음식의 종목은 다르지만, 따뜻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연인이라고 꼭 같은 음식을 좋아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매운 음식은 혼자 있을 때 먹고, 해물은 친구들과 먹고, 샐러드는 회사 식당에서 먹으면 되니까. 하지만 항상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필요하다. 우리는 그 마음이 있기에, 오늘도 한 식탁에 앉아 둘이 같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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