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한계가 있다. 몸의 크기도, 뇌의 용량도, 쓸 수 있는 시간도, 자야 할 시간도 유한하다. 따라서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기쁨, 미련, 욕심의 크기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과 기술이 그 한정적인 기준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 같은 시대에서는 의도적으로 자꾸 뭔가를 절제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풍요의 홍수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하게 산다’는 라이프스타일을 '물건을 버린다'는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로 풀어나가고 있는데, 그 설명의 연결고리에 상당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건을 줄이면 침묵의 투두리스트가 줄고, 그 투두리스트가 줄면 시간을 벌 수 있고, 결국 시간의 여유가 행복의 기본이기 때문에 더 행복해진다는 설명이다. 여행에서의 행복감이 예시로 나와서 지난 여행기억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 격하게 공감해 버렸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버리거나 줄여서 좋은 것이 비단 물건만은 아닌 것 같아서, 적을수록 좋은 것들이 뭐가 있을까 내 기준에서 생각해 봤다. (여기서 '좋다'의 기준은 단기적 쾌감보다는 장기적 행복이 커지는 것, 불안보다는 여유가 늘어나는 것,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선택한 것에 집중하고 소중히 할 수 있는 것 등을 포함한다.)
1. 물욕 이 책의 주인공이다. 물론 월급쟁이에게 쇼핑의 즐거움을 마냥 금기시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 광고와 브랜드의 시대에 나에게 맞는 물건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소비의 즐거움을 넘어서 나 자신을 규정하는 일에 가깝다. 문제는 지금까지 의미 있었던 물건들을 다 끌어안고 있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한 시점에 마음을 주고 챙겨줄 수 있는 물건의 수는 한계가 있다. 미련과 죄책감의 메시지를 던지는 물건에 둘러싸여서는 현재에 집중하기 어려우므로, '지금의 나'에게 의미가 없어진 물건들은 과감히 떠나보내기로.
2. 식탐 쇼핑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유혹이다. TV만 틀면 각종 맛집 프로그램이 나오고 길목마다 음식점 간판이 아우성치는데 그 유혹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이성의 끈을 놓고 위가 꽉 차는 폭식을 하고 나서 기분이 좋았던 적은 없다. 씹고 삼키는 그 순간만 혀에 쾌감이 있었지, 일단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남는 것은 더부룩함과 살, 그리고 자괴감이다. 이 자괴감의 정체성은 단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아니라, 자제력을 잃고 몸을 망쳤을 때 오는 자괴감에 가까웠다. 식탐의 노예가 되지 않고, 몸에도 좋고 맛도 있는 것들을 알맞은 양으로 한 입씩 즐기면서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더불어, 이미 퍼온 밥을 남기는 것은 정말 힘드니 식당에서 주문할 때 식사량을 지금보다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3. 거절하지 못한 약속 사람을 만나면 힘을 얻는 기질과 인맥과 온정을 높이 사는 사회의 사이에서, 애매한 약속들을 거절하는 게 만만찮은 노릇이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거절하지 못한 약속들로 일주일을 빼곡히 채운 후에는 결국 나를 잃어버린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시점부터 몸에 탈이 나서 약속을 주르륵 취소했는데, 본의 아니게 나에게 집중하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떤 의미로든 책이 효과가 있나 보다.
4. 콘텐츠 스마트폰과 컴퓨터, 인터넷이 너무 똑똑한 데다가 열일한다. 정보도 재미도 너무 많다. 이제 나의 뇌는 생각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외부 자극에 바쁘게 반응만 하기에도 부족하다. 심지어 그 자극들이 원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음미하고 소화하기도 전에 다른 자극이 쉴 새 없이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더 이상 좋아하는 것이 아니게 되기도 한다. 지금도 원래 보고 싶었던 알쓸신잡과 효리네 민박이 쌓여있는데 계속해서 쌓이니까 슬슬 투두리스트가 되어가려고 한다.
적어놓고 보니 더더욱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적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확고해진다.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지 않는 순간순간들을 살고 싶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행동이 먼저다. 깨달음은 짜릿하고 달콤하지만 깨달음만으로 바뀌는 것은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행복 요인의 50%는 유전, 10%는 환경, 40%는 매일의 행동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우선 오늘 발견한 안 입는 옷을 두 벌을 지금 당장 버리러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