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지키는 관계의 규칙 3단계
어느 일요일 아침, 눈을 떠보니 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어제부터 몸살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토요일은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는 날이었다. 남편 없이 하루 종일 혼자 앓았다. 아프다고 한 내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못 들었을 거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개'를 보러 갈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 남편은 아픈 나를 두고 '내 친구의 개'를 보러 갔다. 친구가 전셋집으로 이사하면서 키우던 사모예드를 데려갈 수 없게 되어, 몇 달 전부터 훈련소에 맡겨져 있었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매주 그 개를 보러 간 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아침에 가면 저녁 먹을 시간까지 있다 왔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몸이 아픈 날까지 그러니 서운함이 밀려왔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에게 "내가 아플 때는 나를 챙겨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남편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때만 해도 그 말을 믿었다.
그다음 주는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 매일 야근을 했고, 스트레스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평일 내내 남편과 제대로 얼굴 한번 본 적 없었다. 그 주 토요일은 시어머니가 병원에서 퇴원하시는 날이었다. 평소 같으면 같이 갔겠지만,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누워서 요양하듯 지냈다.
그날 밤, 늦게 집에 들어온 남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며 물었다.
"남편, 내일 우리 점심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그러자 남편이 대답했다.
"나 내일 강아지 보러 갔다 와도 돼?"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딸각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분노 스위치가 눌리는 소리'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화를 내고 있었다.
"내가 이번 주에 분명 힘들다고 했잖아. 그런데 하루 종일 밖에 나갔다 와서 지금 개를 보러 가겠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게 가족이야? 내가 이럴 거면 너랑 왜 살아야 되는데?"
화가 너무 나서 그대로 밖에 나가서 30분 넘게 산책을 해야 겨우 진정이 될 정도였다. 집에 들어오니 남편은 태연히 저녁을 먹고 축구를 보고 있다. 더 말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집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지옥 같은 몇 달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그렇게 화를 냈던 걸까? 만약, 아주 만약에, 그때 내가 달랐다면 어땠을까? 그 질문의 끝에는 늘 남편이 아닌, 다른 얼굴이 있었다.
"너는 왜 이렇게 질문이 많니? 그냥 시키는 대로 좀 할 수 없어?"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듣던 말. 내 가슴에 문신처럼 새겨진 말. 처음에는 반항했다. 하지만 저항의 결과는 참혹했다. 나는 어느 순간 순종적인, 아니 무기력한 아이로 바뀌어갔다. 내 감정과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삶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평생을 다른 사람의 규칙 안에서 살아왔다. 부모님이 분필로 바닥에 그어놓은 경계선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 안에 있다고 '착한 딸'인건 아니었지만, 그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쁜 딸'이 되는 건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늘 상대방의 감정과 규칙에 나를 맞췄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배려라고 믿었다. 나만 잘하면 모두가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성벽을 쌓는 법을 몰랐다. 나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알지 못했다. 타인과 나 사이의 경계선을 그어본 적이 없었다. 허허벌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무방비 상태였다. 사람들은 허수아비의 경계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는 안다. 건강한 관계라는 건 서로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내가 먼저 그 경계를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방법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1단계: 나의 '경계선' 알기
약간의 서운함이나 짜증을 알아차린다. 나의 경계선이 침범당했다는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2단계: '나-전달법'으로 표현하기
"나는 [상대방의 행동]을 할 때, [나의 감정]을 느껴요.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줬으면 좋겠어요."와 같이 표현하려 연습한다. 예를 들면, "나는 내가 아플 때 옆에 없으면, 서운해요. 그래서 앞으로는 아플 때는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려 한다.
3단계: 일관성 있게 지키기
상대가 그 규칙을 어긴다면 다시 한번 규칙을 상기시킨다. 만약 상대가 계속 무시하면? 그 일에 대해 명확하게 항의한다. 내 규칙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나의 불편한 감정을 모른척하지 않는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솔직하고 정중하게 표현한다. 여기까지 괜찮고, 여기서부터는 불편하니 나를 존중해 달라고 말이다.
나 말고는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나를 지키는 건 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