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생각이 들 때

by 윤슬 yunseul

신은 아무도 구원하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자의도 있었지만, 타의가 더 컸다. 성경구절을 잘 외워서 상을 받아오면 아빠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열심히 기도를 하면 엄마가 "우리 딸은 믿음이 좋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때는 신이 뭔지도 몰랐다. 그저 칭찬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때 나에게 신은 아빠였고, 엄마였다.


분명, 그들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모든 것이 언제부터 바뀌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방을 어질러놓고 내가 안 했다고 거짓말을 했을 때부터였을까. 자습 시간에 떠들다가 나머지 공부를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온 날부터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받아쓰기 40점을 받아간 날부터였을까.


한번 매를 들기 시작한 엄마는 다시는 그 매를 내려놓지 못했다. 한번 시작된 체벌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엉덩이에 피멍이 들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때는 몰랐다. 남들도 다 그러는 줄 알았다.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하필 엄마는 갱년기 었고, 아빠는 카드 대란의 피해자였다.


그 무렵, 하필 교회도 말썽이었다. 사람들이 목사님과 장로님을 주축으로 두 패로 갈려 싸우기 시작했다. 새 성전 건축을 위해 한동안 열심히 걷은 '건축 헌금'이 문제였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 그 돈에 손을 댄 건 분명하다. 엄마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모든 분노는 가장 만만하고 약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누군가 그때 나에게 [지옥이 어디냐]고 물었다면 나는 [우리 집 주소]를 말했을 것이다.




그해 여름 수련회였다. 나는 그 사이 눈에 띄게 어두워져 있었다. 선생님들은 알게 모르게 나를 걱정하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중에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분도 있었다. 하루 종일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챙겼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모두를 대했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이 슬며시 열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수련회의 하이라이트, 저녁 집회 시간이었다. 어김없이 선생님은 내 옆에 앉았다. 서서히 집회가 시작되었다. 엉엉 우는 소리, 알아듣지 못할 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들은 웅장한 찬송가 소리와 뒤섞였다. 모두가 정신없는 사이, 나 역시도 신께 빌었다. 제발 나를 구해달라고. 하지만 신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옆에 앉은 선생님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놀란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제발 나를 도와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울음이 터졌다. 몸속에 있는 슬픔 덩어리를 다 토해내기라도 할 듯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 하나, 나를 바라보던 그 선생님의 표정만 선명하다. 그 표정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한 당혹감이었을까?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한 자의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음날 아침, 그 선생님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무슨 나병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슬슬 피해 다녔다. 그때 알았다. 결국 인간도, 신도 나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아,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구나. 내가 나를 구해야 하는 거구나.'


그 후로 20년 동안 난 누군가에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 긴 시간을 버티게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적 교회에서 들었던 진흙에 빠진 수레 이야기였다. 어리석은 자는 수레바퀴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만 했지만, 지혜로운 자는 어깨를 밀어 넣어 스스로 수레를 빼냈다.


나를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 그게 내가 선택한 구원의 길이었다.

구원은 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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