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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늘 Oct 06. 2022

내가 올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오랜만에 졸업했던 모교에 방문했다. 잠시 볼 일이 있어 들렀는데 왠지 그날따라 학교를 한 바퀴 쭉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폐쇄되었던 쪽문을 이번에 다시 개방하였기에, 쪽문으로 들어가 학생회관, 기숙사로 통하는 길을 쭉 따라 걷고 싶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걸었던 길에서 이런저런 감성을 느끼기도 전에 공사장 먼지에 뒤덮이고 말았다. 학생회관도, 기숙사도 다 공사 중이었던 것이다.


  우리 학교는 기숙사가 1관과 2관 두 개가 있었는데, 그중 1관은 나보다 연배가 있으신 동학년 선생님께서 대학에 다녔을 때에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만큼 오래되었던 건물이라 내가 1관에 살았을 때도 종종 보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을 목격했었다. 그 건물을 드디어 허물고 새로 지은다니, 재학생이 더 좋은 환경에서 지냈으면 하는 선배의 마음으로는 반길 일이지만, 고향이 먼 재학생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소식은 아니다. 건물을 허물어 텅 비어버린 공터 주위를 둘러싼 공사 가림막을 보며 변해가는 학교의 모습에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있던 공간이 더 좋은 공간으로 바뀌는 것은 반길 일이다. 적어도 건물의 노화로 학생의 안전이 위협당해 뉴스에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던 곳이 아예 사라지게 된 건 퍽 쓸쓸하다. 이제 그곳을 추억할 만한 곳은 내 핸드폰 속 사진첩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항상 내가 지나왔던 장소에 미련이 남았다. 초등학생 때 살았던 집, 중학생 때 친구와 자주 가던 라면 가게, 고등학교 3학년 때 내리 공부했던 우리 반, 울고 웃었던 학생회관 동아리실, 임용고시 준비 때 매일 가다시피 했던 카페 등 내가 마음에 담아둔 장소가 너무나 많다. 이중에는 지금 있는 장소도 있고 없는 장소도 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그때 우리의 모습이 눈에 보일 것 같은데, 이를 추억할 장소가 사라진 것이다.


  미련이 남는 것은 장소만이 아니다. 한때를 함께 했던 사람도 그리울 때가 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걸 자주 겪지 않았을 때에는 '지금 이 만남이 설마 마지막이겠어?' 하는 생각에 헤어질 때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같은 반이기만 했던 친구를 졸업하고 볼 일은 거의 없듯이 정말 그 이후로 볼 수 없었던 사람도 점점 쌓여만 갔다. 그리고 옛날 생각을 잠깐 하게 되면 그때를 함께 했던 사람이 그리워지곤 했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도 가끔 그리워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요즘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원래도 규칙적으로 쓴 적은 잘 없긴 했지만, 요새는 내가 지금 있는 이곳, 내가 함께 하는 사람들, 같이 있던 이야기, 감정, 추억 등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까웠다. 그리고 나 자신도 올해 여러 일을 겪으면서 속에 담아왔던 이야기를 안에만 두고 싶진 않았다.


  어떤 것이든 한 자리에 있지 않고 흘러가며 점점 변할 텐데, 나도 이제는 계속 뒤를 보며 쓸쓸해하지 않고 내가 지금 있는 순간에 충실하고 감사하며 기록하고 싶었다. 빈 공터만을 바라보면 그저 쓸쓸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묻어놓았던 타임캡슐을 발견하면 궁금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지 않을까? 나중에 다시 지금을 돌아보는 내가 쓸쓸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 본 것, 갔던 곳, 함께 했던 사람, 이야기 등을 타임캡슐로 잘 만들어놓고 싶다.


기숙사 1관에 살 때 같이 먹었던 케이크 사진. 사진첩에 남은 흔적이 딱 하나밖에 없어서 찾기가 힘들었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생활하고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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