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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의 언어

외국계 패션 리테일 최연소 팀장으로 승진하며 깨달은 인사이트

by Jiiin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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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의 공간이 완성되려면, 촉박한 타임라인 아래 수많은 팀이 0부터 1을 만들어내기 위해 협업을 한다. 정교한 설계도면과 눈길을 끌기 위한 비주얼 플랜부터, 땀 흘리면서 같이 빈 곳을 하나씩 채워가는 순간들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제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상상을 현실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아름답지만은 않기도 하다. 1초의 타이밍과 1cm의 디테일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내는 걸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도 많다.


2) 일할 때 변수를 최대한 줄이려면, 컨트롤 가능한 범위 내의 것들은 미리 대비하는 게 좋다. 그래서 고객과 직원이 공간에 발을 들이는 그 순간부터 나가는 찰나까지, 단계별로 체계화해서 익히고 실제로 검증해 보는 프로젝트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 ‘사람’이 들어가는 순간, 게임의 룰이 통째로 바뀐다는 걸 간과했다. 아무리 촘촘하게 예측해서 최상의 경험을 디자인해도, 마지막에 남는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고객 한 명 한 명의 ‘감정’이었다.


3) 인간은 몇 시간 동안 들었던 지식을 머릿속에 다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그 공간과 사람에게서 느낀 감정만이 잔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아직 갈 길이 너무 먼 애송이일 뿐이지만, 예전에 일할 때 수천, 수만 명과 소통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다. 그 순간에 얼마나 진심을 다해서 고객에게 즐거운 경험을 줬는지가 가장 중요하더라. 하지만 이건 미리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팀워크와 내공, 센스 같은 감각들이 더욱 빛을 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4) 뒤통수에도 눈을 달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전생 덕분인지, 이젠 어딜 가도 자연스레 소비자와 공급자 두 개의 시선으로 공간을 읽게 된다.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배려와 익숙한 듯한 동선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던 스몰 톡 한마디가 모두 누군가의 깊은 고민과 정성이었을 수 있다. 공간의 분위기를 변화하게 하는 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진정성과 팀워크인 것 같다. 만족스러운 경험의 끝에는 언제나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5) 고작 몇 년 경력으로 하는 오만한 말이지만, 내게 책상 위에서만 머무른 브랜딩은 어딘가 부족하다. 최전선에서 부딪히면서 다져온 튼튼한 체력과 멘탈, 단순한 상품을 넘어 오감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들이 멋져 보인다. 공간은 사람을 닮아가고, 눈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공간의 언어가 조금씩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라 여기고,

사람들에게 더 나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은 욕심에

오늘도, 내일도 뭐든 더 경험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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