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가지 예술에서 영감 받은 일 가치관에 대하여
"솔직히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사색으로 시작된 글
1) 대학교 1학년 1학기에 취경원의 4학년 대상 1:1 상담을 신청한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도저히 몰라서 답답했었던 것 같다. 상담 컨설턴트 님께서 좋아하는 건 남는 시간에 하고, 기업과 직무를 먼저 정해 채용 과정을 준비하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주셨다. 결국 21살의 청개구리는 몰래 휴학하고 노량진에 가서 삼각김밥이나 먹었다. 주변에서는 "경제학부니까 지금부터 시험 준비하거나 스펙 쌓아야지"라고만 했고, 그 당시의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2) 복학 후에도 동기들이 바라는 직업이나 회사를 정해 대외활동을 3-4개씩 하며 바쁘게 살 때, 나는 끊임없이 고뇌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경험한 만큼만 전부라 오해하나 싶어, 새로운 걸 해보자고 마음먹고 프랑스로 떠났다. 1년 넘게 몰랐던 제 모습을 찾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귀국 후 일상으로 돌아오니 그동안 넓힌 내 세계와 깨달음이 무색해졌던 것 같다. 주변의 시험 합격, 유명 기업 취업, 석사 유학 소식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나 보다.
3) 예전에 '할 수 있는 일 중 돈 되는 일이 결국 직업'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좋아하거나 세상에 필요한 일은 뒷전이 되더라. 그동안 했던 수업, 학회, 동아리, 대외활동, 알바, 해외 경험, 인턴 등 중구난방인 이력들의 공통점을 찾아서 지원했었다. 내가 어필하기 유리한 직무와 전 세계 친구들이 다 알 만한 회사라는 두 가지 기준에 맞췄다. 나와 맞든 아니든 일하지 않는 시간에 좋아하는 걸 하면 되니, 일단 뭐든 버텨보자고 결심했다.
4) 하지만 돈을 벌면 믿는 구석이 생기니, 여가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식지 않아서 도저히 삶과 분리가 안 되었다. 이분법 작전을 성공시키기보다는 일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게 더 빨랐을 것 같기도 하다. 혹독한 시간을 보내며 얻은 것도 많아서 감사했지만,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는 듯했다. 앞으로는 변화에 빠르게 잘 적응하는 게 중요한 역량이 될 걸 알면서도 두려워서 안주했던 것 같다.
5) 어렸을 때부터 본업을 잘하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 그럴듯한 명함이 없어지면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질 거란 환상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기도 하다. 그 사이에 재미있는 일이 생겨도 결국 다 여가의 영역일 뿐이라며 내치기 바빴다. 내 흥미를 희생해서라도 사회가 정한 틀 안에서 살아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이 있었달까.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좋은 대학, 성적, 기업만이 목표가 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6) 당장 비범한 걸 시작하겠다는 성찰이나 다짐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의 내가 망설이지 않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하며 부딪혀보면 좋겠다. 어떤 형태의 일이든 취미일 뿐이라고 선을 긋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다. 일과 삶은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는 걸 왜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게 된 걸까? 내게 유의미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어 행복한 날이다. 적어도 아주 먼 미래 제 묘비명에 '공부했음, 취업해서 일했음'이라고만 적히고 싶지는 않다.
허수영 개인전 中 <버섯> (2022)
홍승혜 <복선伏線을 넘어서Ⅱ> (2023)
문신(文信) : 우주를 향하여 (2023)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2023)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 파르네시나 컬렉션 (2023)
70·80 추억의 거리 (2022)
장 줄리앙 <그러면, 거기> (2022)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책세상, p.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