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겼지만 다 보였던

by 박사월

“우리 과 사람들 안 보이지?”

“에이 절대 안 와.”


우리는 스파이라도 된냥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같은 과 동기라는 이유로 연애를 바로 알리기 부담스러웠고, 비밀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다 한 뒤, 가장 친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연애 소식을 알리고, 서서히 자연스럽게 우리가 연애하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는 걸 바랐다. 아니, 어쩌면 나만 그런 걸 바랐는지도 몰랐다. 넌 내가 당황하는 건 안 보이는지 태연하게 미소만 지었다.



“손 잡지 마. 이러면 들켜.”

“에이 안 보여. “


그 애는 내 손을 잡고는 책상 밑으로 손을 숨기며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난 우리 과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그 선배는 발 넓고 사교적인 선배로, 부학생회장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하필 들켜도 이런 사람한테 들키냐, 큰일 났다.’ 선배와 눈이 마주친 순간,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장이 덜컹했고, 마주 잡은 손은 끈적거려졌다.


“이제 우리 어떡하냐.”

“에이 뭐 어때.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알게 돼.”


사귀고 나서 알게 된 건데, 저 애는 너무 태평하다.


그 뒤로 과방에 가면, 선배들은 우리를 보고 말없이 배시시 웃었다. 선배들끼리는 이미 소문이 다 난 모양이었다.


”너희 둘이 뭐라도 될 줄 알았어. 학생회장, 부회장 할 줄 알았는데 사귀네. “


우리를 잘 아는 친한 선배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했고, 난 그 선배의 눈을 피했다. 내 옆의 남자친구만 대답할 뿐이었다.


”학생회장은 안 해요~“


그래도 다행히 선배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진 거고, 우리 동기들에게는 바로 소문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배들이 알면 동기들이 알게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학생회를 같이 했다. 그래서 우리 과뿐만 아니라 학생회에도 이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비밀연애를 하려고 했다. 그래, 이번에도 실패했다.


학생회에서 엠티를 갔다. 계곡으로 가서 물놀이를 하고, 숙소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 계곡물은 발만 담가도 머리끝과 손끝까지 시원해질 정도로 차가웠고, 저녁밥은 마음속을 따스하게 채워주었다.


그때의 우리는 사귄 지 얼마 안 된 아주 파릇파릇한 초창기 커플이라 한창 둘만 같이 있고 싶던 때였다.


‘잠깐 나올래?’

지잉-하고 울리는 카톡에 놀라, 나가는 남자친구와 시간차를 두고 말없이 쓱 숙소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만난 우리는 어디에 숨어서 쪼그려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풀숲의 모기가 우리를 다 뜯어먹고 있어서 몸 이곳저곳이 간지러웠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간질거려,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계곡물소리가 우리의 대화의 깊이를 더해주었고, 풀잎에서는 향긋한 풀내음이 났다.


“근데 우리 너무 밖에 오래 있는 거 아니야?”

“에이 그냥 뭐 하나보다 생각하겠지.”


얘는 너무 생각이 없다. 그런데 나도 그렇게 같이 있는 게 좋아서 결국 오랫동안 같이 시간을 보냈다. 분명 우리를 발견할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산책을 하던 선배에게 우리의 모습이 발각되었다.


그 선배는 방긋 웃는 미소를 지으며 땡그래진 눈으로 말했다.

“둘이 있어. 난 다시 들어가야겠다.”


“우리 다 들켰는데?”

“그러게. 오히려 좋아. 앞으론 그냥 손 잡고 다녀도 되겠다.”

얘는 또 속 편한 소리를 하며 내 속을 긁었다. 그냥 같이 있었다고 우기면 되지 않느냐고? 우기려 들 수 없었다. 또 손을 잡고 있었기에.


그 뒤로 그 선배는 다행히 우리의 비밀을 잘 지켜주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결국은 우리가 사귄다는 걸 다 알게 됐다. 선배들은 한결같이 “으이구. 너네 맨날 싸우더니.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자유를 얻어, 학교 안을 거침없이 함께 나아갔다. 비록 딱 하루짜리 비밀 연애였지만, 그때야 처음으로 진짜 연애를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차가웠던 네 손이 나의 온기로 따뜻하게 데워졌다. 난 그 시원함을 느끼며 네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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