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과 질투의 선

남녀 간의 사랑

by 박사월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이 있다. 다정하다는 것은 정말로 매력적이지만, 문제는 그게 바로 내 남자친구라는 것이다. 다정한 남자친구의 장점은 엄청 다정하다는 것이지만, 그의 단점 또한 너무 다정하다는 것에 있다.


“어떻게 내가 앞에 있는데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어?”

“아니, 그냥 나는 앞에 보이니까.. 미안해..”


나와 남자친구, 여자인 내 친구가 같이 길을 걷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어디 카페를 갈지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때 남자친구가 내 친구 머리카락에 있는 거미줄을 떼어주는 거다. 정말 미친 거 아니냐고. 카페는 테이크아웃을 하고, 우리는 그 친구와 헤어지고 바로 투닥거렸다.


“너는 왜 모든 사람한테 친절해?”

“내가 매정한 것보다는 다정하고 친절한 게 좋지 않아? 언제는 다정해서 좋다며..”

“네가 다정해서 좋은 건, 나한테만 그럴 때이지. 다른 모든 사람들한테 다 다정하게 굴면 싫지.”

“지금 질투하는 거야?”


웃으며 던지는 그 말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나 질투가 엄청 많다!"


질투라는 감정은 부정적인 것 같아서, 내가 느끼고 싶은 감정은 아니었다. 게다가 난 원래 질투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내가 사실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건, 얘랑 연애하고 나서부터다.

난 아래로 여동생만 둘이지만, 맏이라서 관심을 잔뜩 받으며 자랄 수 있었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도 날 참 좋아해 주셨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혼날 일도 안 하니까. 그래서 누군가에게 더 관심받고 싶다던가, 나보다 누굴 더 예뻐하는 것 같다던가, 하는 느낌은 태어나서 겪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다른 친구가 날 질투해서 피곤했던 적은 있었어도. 그런데 남녀 문제는 달랐다. 난 시도 때도 없이 질투의 화신이 되었고, 그런 날 보며 남자친구는 방긋방긋 웃어댔다. 그 웃음을 본 난, 커다란 분노를 느끼며 나의 주변 공기를 뜨겁게 만들었다.


“그럼 머리카락에 거미줄이 보이는 걸 어떻게 해?”

“떼긴 해야겠지만, 네가 떼면 안 돼. 나한테 말하면 내가 할게.”


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남한테까지 친절한 거야!






“나랑 서경이는 다 도착했어. 지금 어디야?”

“나 다 와 가.”


오늘은 나와 남자친구, 서경이와 약속이 있는 날이다. 서경이는 나와 남자친구의 대학 동기이다. 나랑은 별로 안 친한데, 남자친구와는 가끔 밥도 먹으며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


“서경아, 너 뭐 좋아해? 뭐 먹을까 오늘?”


서경이의 취향을 모르는 나는 뭐 먹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러자 서경이는 고민하더니 돈가스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역시, 남자들의 소울푸드는 돈가스와 제육덮밥인가. 밥을 다 먹고 나와서 볼링을 치러 갔다. 역시나 내가 볼링을 제일 못 친다. 서경이가 칠 차례가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엉덩이에 깃털 같은 게 붙어있었다. 서경이가 눈치 못 채게 깃털을 쓱 뗐는데, 남자친구가 날 째려보고 있었다.


“아, 아니.. 이게 그냥 붙어있어서.. 엉덩이는 안 만졌어. 진짜야.”

“나보곤 머리카락에 거미줄도 떼지 말라더니.”


할 말이 없었다. 심지어 난 머리카락도 아니고 엉덩이였으니.. 서경이는 눈치도 못 채고 열심히 볼링을 치고 있었다. 나는 정말 깃털만 뗀 것뿐이라 억울했다. 지난번 남자친구가 많이 억울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번에 내가 사과하지 않으면, 나중에 같은 사건으로 남자친구에게 사과받을 수 없겠지?' 스스로가 조금 찌질 해 보였지만, 내 행동이 잘못됐단 생각은 안 들었다. 어쨌든 사과하는 건 좋은 거니까.


“내가 미안해.”


남자친구는 사과를 바로 받아주었다. 볼링 대결은 결국 나의 처참한 패배로 끝났다. 서경이는 버스를 타고 먼저 돌아갔고, 나는 남자친구와 산책을 더 하기로 했다. 아직은 한여름이라 공기가 후덥지근했지만, 그늘 아래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내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을 것 같았다.


난 다정한 것이 좋다. 다정한 사람도 좋고, 내가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것도 좋다. 다정한 행동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다정한 말 한 마디면 얼었던 마음도 녹게 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남자친구가 다른 사람에게 다정한 건 싫다. 다정하게 행동한다고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대하면서, 남자친구가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너무 싫다. 이 얼마나 모순된 생각과 감정인가. 다정한 것이 좋다면서 다정한 행동을 하는 남자친구에게 면박을 주다니.


“너의 다정함은 나에게만 하는 특별한 행동인 줄 알았어. 근데 다른 사람한테도 그러면, 나나 그 사람이나 다를 게 뭐야?”

“그랬구나. 난 너만 사랑해.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 다정하게 행동하는 건 일종의 매너일 뿐이야. 그냥..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 같은 거.”

“나도 알아. 그렇지만 싫은 걸 어떻게 해. 내 눈앞에서는 하지 마. 안 보일 때는 내가 봐줄게.”

“음... 알았어. 네가 그렇게까지 싫다면 조심할게. 사실 아까, 네가 서경이 엉덩이에 붙은 깃털 떼주는데 나도 짜증 나더라고.”


다정과 질투, 질투와 사랑 사이의 아슬아슬한 선에서 외줄 타기 하는 것 같은 이런 심정은, 언제쯤 적응이 될라나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은, 다정과 사랑의 그 경계에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된 것 같다. 다정도 선을 그으며 해야 한다는 걸 이제 너도 알려나? 결국 나도 같은 선을 넘어봤느니, 마음 한쪽이 묘하게 가벼워졌다. 복수한 것 같아 뿌듯했다. 뜨근했던 공기가 식어, 서늘한 바람이 마음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