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적인 예술가인, 그래서 더 모순적인 작품인,
자신의 작품이 고가로 판매되었다는 거짓말로 몸값을 높이려 했다는 사실 때문에 짙은 상업성으로 비판을 받은 작가였다고 한다. 나는 재능만능주의여서 예술가, 광고인 등 재능과 관련된 영역 전문가들에게 필요이상으로 도덕성 부분에서 관대한 편이기 때문에 이것이 그의 작품을 판단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현대미술이기 때문에 역시나 완전한 몰입보다는 머리를 환기시키는 정도였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머리 속 어딘가 구석탱이에 내려두었던 생각들을 끄집어내는 정도. 현대적인 것을 기반으로 했으니 더욱이 일상에 대한 경각심이 일어나게 한다. 그리고 데이미언 허스트는 꽤 논란도 있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괴한 작가인 것 같다. 굉장히 깊은 심연까지 들여다보는 탐구정신이 있는데다가 가톨릭 집안의 규율에도 속박되었고 그런데 자신은 너무도 대범하고 자유로운 영혼인 사람. 그런 그가 그려내는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시선이 참 독특하다.
그의 작품을 시간 순으로 보면 삶과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브로슈어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초기 콜라쥬 작품에서 그의 예술인생이 시작된 길을 언뜻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망한 어느 골동품 수집광 노인의 집에 있는 낡은 물건들을 두서없이 콜라쥬한 작품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당시에 모아놓은 물건들, 그것들이 있다면 이 사람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흔히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표현하는데 그와 같은 표현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콜라쥬에서는 실제로 아주 묵은 냄새가 났는데 이것 또한 그 노인이 느껴지는 것처럼 케케하고 안쓰럽고 무기력하고 그런데 그 속에 있는 의지가 느껴지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스핀페인팅은 회전하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부어 제작하는 방식인데 우연하게 일어나는 사건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아름답게 흩뿌려져있는 페인팅 중간중간에 굵고 진하게 그려져있는 페인팅에 주목하게 된다. 아주 역동적인 모양으로 빛이 산란하는 모양으로 아름답게 뻗어나가고 있는 컬러들 사이로 둔탁한 몸짓을 보이는 컬러다. 그 페인팅은 분명 집중하면서 빠르게 작업하지 않고 멈춰있는 시간속에서 만들어진 페인팅일 것이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멈춰있는 것은 점점 고여서 썩어가는 죽음을 의미한다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일매일 긴장하고 모든 페인팅을 오류하나 없이 아름답게 만들어내기보다는 저 굵직한 몇가지의 선을 통해 잠시 쉬어가거나 혹은 짙게 빠지는 무언가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은 매순간 움직이든, 잠시 멈춰있든 그 모든 것이 모여 우리의 인생이 되는 것 같다.
오히려 그의 그 유명한 작품들은 그다지 인상깊지 않았다. 포름알데히드 수용액에 담긴 거대한 상어와 소의 머리를 향해 가는 파리들을 보여주는 천 년.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모형으로 만들어진 이 것들은 무언가 세포가 찌릿하며 올라오는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하지는 못했다.
할머니가 한 말 중 가장 명언이면서 섬뜩한 말이었다. 어쩌다 허허실실 웃으면서 나온 말이었는데 원래 모든 할머니들이 으레 그러하듯 살고 싶은 욕망을 가득하면서도 말로만 죽고싶다는 모순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원래 그런 노인들의 표현은 어느 정도 이타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자식에게 미안함이 있고 늙은 몸으로 오래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회의감도 있고 그 복합적인 감정이 이런 모순적인 행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모순적인 것도 이상하리만치 싫어하는 냉정한 인간이지만.
그런데 할머니의 표현은 달랐다. 이타적인 마음 그 어느것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며 이익을 얻으려는 더 큰 욕심이다. 그러니까 더 살고 싶다는 것은 분명 내 욕망인데 내가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마주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남탓을 한다. 의학이 너무 발달해서 내가 죽지 못한다고. 사실 나는 늙었으면 자연스럽게 죽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숭고한 사람인데 이 세상이 너무 발전하다보니 인간을 계속해서 살릴 수 있을 약이 있어서 내가 맘대로 죽지도 못하고있다는 논리다. 만약 그게 정말 진심이라면 그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표정은 심란했어야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 점이 소름끼친다. 삶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도대체 얼마나 지독하게 거대한 것인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약장 연작에서 그런 불쾌함을 받았다. 약에 의존하고 한 없이 삶에 집착하고 실체도 없는 규율 규범을 지켜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고집스럽게 영위하고자 하는 인간의 무자비함에서 나는 역함을 느낀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임을 알지만, 그리고 결국 나도 그런 인간 중 하나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구역질이 난다.
열두 사도 중 한명으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졌다고 전해지는 성 바르톨로메오, 그리고 천사의 해부학. 이것들을 보며 나는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모태신앙으로서 나는 살면서 종교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엄마는 그나마 자유롭고 현실적인 종교를 지향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종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회의적이거나 분석하려 하면 바로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차단한다. 믿음의 영역이란 환상에 가깝다. 분석하면 안되고 그저 믿어야 한다. 왜냐면 근거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찾아오는 안정과 행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설사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사실 따위는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데미안 허스트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든 나에게는 종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것으로 느껴졌다. 신성하다고 믿고 있는 천사도 결국은 이렇게 해부할 수 있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 바르톨로메오의 모습을 아주 현실감 있게 표현하여 자신의 살가죽을 들고 칼을 들고 있는 성인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렇게 종교를 현실적인 시선으로 마주할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서로 물어뜯을 듯이 싸우다가 눈을 감고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때와 같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이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위선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믿음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게 된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나의 의심과 위선에 대한 저항감이 피어오른다. 나는 왜 아직 신앙심이 있는가. 내 안에 있는 신앙심은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는가. 이렇게 한낱 전시작품을 보고서 이토록 흔들리는데 이것을 신앙심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나의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좀 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를 느낄 수 있는 철학적인 작품을 기대했는데 그런 방향은 아니었다. 역시 그런 것은 다크투어리즘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이 전시는 그 방향은 아니었다. 대신 아주 상업적인 예술가이고, 과학적인 종교인이었던 모순 그 자체인 데미안 허스트라는 인물의 고민을 엿볼 수 있어서 재밌었다. 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회의감과 사랑이 동시에 느껴졌다. 마치 그의 이런 모습이 나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