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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아 Mar 13. 2019

물의 의미로 본 영화 '로마'

feat. 싸지르고 가면 다냐!



넷플릭스 영화 중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의 감독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작품이 있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입니다.




오프닝 첫 장면에 청소되고 있는 바닥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모습이 마치 바다를 연상시킵니다. 하수구로 쏟아지는 물은 마치 거센 파도처럼 보이며, 세제 거품은 파도의 거품처럼 보입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때문에 물은 생명이며 그를 위한 희생이며 그와 함께 오는 책임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클레오에게 물은 역시 생명이자 희생이고 책임입니다. 


극 중에서 그녀의 고용주 소피아는 남편이 캐나다 퀘벡으로 출장을 가는 날, 클레오에게 처음으로 “망할 개똥을 치우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하니!” 라며 화를 냅니다. 첫 오프닝의 바닥 청소 장면은 클레오가 개똥을 치우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초반에 직접적이진 않지만 고단한 삶의 클레오를 따라 보여줍니다.

빨래를 하고 있던 클레오는 페페와 함께 누으며, “페페, 죽어 있는 것도 괜찮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때 화면의 오른쪽에서는 빨래의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며, 주변의 널려진 빨래들과 물빨래를 하고 있는 다른 인디오의 모습이 보입니다.


영화는 클레오가 그녀의 남자 친구 페르민과 관계를 갖고 난 다음 클레오가 샤워를 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샤워기의 물을 정면으로 맞는 클레오. 물은 생명이자 희생이며 그에 따른 책임입니다. 남자와 관계를 맺고 난 다음 물을 온몸에 흠뻑 적시는 것은 생명의 잉태와 희생 그리고 그녀 혼자 오롯이 그 책임을 다하겠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역시나 남자 친구 페르민은 자신의 책임으로부터 도망을 가고, 심지어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며 협박을 합니다.


그 이후 클레오와 페르민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됩니다. 

격변의 70년대 멕시코, 아기 침대를 사러 클레오가 가구점에 들어오는데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합니다. 이때 도망친 남자를 쫓아서 남자들 무리가 가구점으로 들어오고, 총이 누군가를 겨눕니다. 그리고 들리는 총의 발포음. 실제로 우리 앞에 보이는 총이 발포된 것이 아니라, 뒤에 있는 인물이 총을 발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앞에 있는 총이 발사된 듯 보입니다. 총을 겨눈 자는 페르민입니다. 페르민이 클레오를 겨누고 있던 것입니다. 

페르민이 실제로 총을 발사하지 않았지만, 장면에서는 마치 그 총이 클레오와 배 속 아기를 향해 실제로 발사된 듯 클레오의 양수가 터집니다. 자궁에 잉태된 생명은 물속에서 열 달간 자랍니다. 양수는 양막의 액체이며, 임신을 한 여성의 뱃속의 물입니다. 생명의 물이 클레오의 몸속에서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뱃속의 아이는 안타깝게도 죽은 채로 태어납니다.


클레오는 소피아의 가족들과 함께 기분전환 겸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바다가 나옵니다. 처음 오프닝 장면부터 언제 바다가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이제 뭔가 클레오의 결정적인 사건 또는 감정적 표현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다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는 클레오와 소피아의 가족들. 소피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들이 바다에 빠지게 됩니다. 수영을 못하는 클레오가 다행히 바닷속으로 들어가 힘겹게 아이들을 구합니다. 무사히 바다를 나온 그들. 그때 클레오가 울음을 터트립니다. 처음으로 감정이 폭발한 것입니다. 자신은 그 애를 원치 않았다며, 아이가 태어나길 원치 않았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녀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어간 것은 원치 않았던,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었던, 그녀의 희생이 따라야 할 생명이었던 자신의 배 속, 물속에 있던 아기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죠. 


우리는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을 할 때 쓰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기겠다.’라는 진 부적인 멘트를 들어봤습니다.

물은 보편적으로 생명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여성에게 책임인 거죠. 가정일과 아이를 낳는 일, 그리고 그 아이를 책임지고 키우는 일. 여성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이것들은 피하고 싶기도 하며, 감당해 내야 하는 책임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클레오뿐만 아니라 그녀의 고용주 소피아의 이야기도 함께 보여줍니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그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영화 로마는 절제와 생략적인 표현으로 오히려 관객들의 마음을 적십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아 그리고, 유튜브 같이 하고 있어요! -> https://youtu.be/0e8p8wlOw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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