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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아 Jan 15. 2019

파리지앙들의 친절에 관하여

feat.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세요

그림: Charlotte Salomon
파리지앙들은 불친절하다


사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친절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뭐 신경 써도 어쩌겠는가.) 실제로 이 곳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불친절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체류증 연장을 하러 갔다가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한국의 체류증 연장을 하는 곳은 어떤지.. 가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파리는 정말 전쟁터다.

우선 체류증 연장을 위해 관공서를 가기 전 예약을 해야 하는데 보통 4~5달 전에는 신청을 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7월에 신청했는데, 12월에 예약이 잡혔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관공서에 가면 정말 난리통이다. 나처럼 예약을 잡고 온 사람부터, 예약을 잡지 못했지만 당장 체류증 연장을 해야 하는 사람들, 학생비자, 취업비자, 결혼비자 등등 받으려는 사람들, 머리색이 다양한 인종들... 북적북적. 여기저기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예약을 하고 간 경우이기 때문에 다행히 비교적 쉽게(?) 한 시간을 기다려서 담당자에게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다. 예약을 했음에도 기다림은 필수이다.

여차저차 서류를 제출하고, 약 한 달 뒤 체류증을 받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으면 그때 경시청으로 가면 된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나의 프랑스 체류를 증명해줄 '헤세피세'라는 것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려고 전철을 기다리는데... 헤세피세를 보니 아버지 성함과 내 출생지가 잘못 적혀있는 것이었다.


깊음 빡침을 느끼며, 나는 가던 길을 돌아서 다시 내 담당자에게로 갔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옆에서 일하는 분한테 상황을 설명하고, 고쳐달라고 얘기를 하니, 한참 도와주던 그녀는 갑자기 나한테, "너 근데 나한테 이거 했니?"라고 묻는 것이다. "아니, 니 옆에 있던 마담한테 했는데, 지금 자리에 없네"라고 말하자마자 그녀는 "아, 그럼 이거 내가 잘못한 거 아니네. 나랑 상관없으니 그 마담한테 말해. 아마 점심 먹으러 갔을 거야"라는 것이다.

아니 본인도 충분히 고칠 수 있으면서, 동료가 잘 못 쓴거 고쳐줄 수 있는거 아닌가? 상관이 없다니!!! 여기서 또 깊음 빡침을 느끼며, 원래 나를 담당했던 마담을 핸드폰을 보며 하릴없이 기다린 지 15분쯤.. 마담이 등장했다.

등장과 동시에 내가 잘못된 부분을 설명하면서 고쳐달라고 하니, 마담이 하는 말이 더 기가 막혔다.

"응. 그래 잘못됐네, 근데 나 지금 점심시간이야. 1시까지 기다려줘"

이 말과 함께 그녀는 내가 보이는 자신의 테이블에 앉아 이어폰을 딱 끼고, 과자를 먹으면서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네? 제가 잘못 본 것입니까?


자기 잘못으로 인한 민원이 들어왔는데, 점심시간이니 기다리라는 발상은 어디서부터 나온 거죠?

부들부들 떨며 그녀를 노려보며 그녀 앞 소파에 앉아있는데, 한참을 부들거리던 나는 그녀를 보며 "아 참 자기 속은 편하겠다. 일하는데 스트레스는 없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맞구나. 여기는 노동자를 위한 나라 프랑스구나. 그들은 점심시간, 퇴근시간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지.

내가 여기서 일하면 진짜 편하겠구나.라는 생각과 한국에서 내가 일해오던 방식이 떠올랐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도 따로 없이 그저 밀려오는 일에 떠밀려 벅차게 일하던 모습. 그런 내 모습에 질려 난 이곳까지 오게 된 거지.라는 생각이 드니, 그녀에게 굳이 깊은 빡침을 느낄 필요가 없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 1시 정각이 되자, 나를 불렀다.


그렇다. 여기는 이런 곳이다. 누구한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곳.

나는 내 할 일을 그 시간에 맞춰하면 되는 곳이다. 그래서 한국사람들한테는 꽤나 충격적인 곳.

누군가 나의 갑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의 불친절에 대해 욕 할 필요 없다. 우리도 노동자이니, 욕하기보단 부러워할 만한 것. 이 곳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는 알량한 몇 푼으로 상대방의 웃음과 친절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의 웃음과 친절을 원한다면, 처음 그 가게에 들어왔을 때, 그들의 눈을 보고  방긋 웃어주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서비스 질은 달라진다. 누군가의 갑이라는 생각이 아닌, 새로운 사람을 본 반가움 정도이면 된다.


이것은 이곳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이 곳 프랑스의 상대방의 친절과 웃음에 관한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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