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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인 jiin mia heo Jan 20. 2022

유대교 장례식에서 느껴지는 우리네 명절 공포증

엠마 셀리그먼의 영화 '시바 베이비(Shiva Baby)'

 역시 영화는 젊은 여성이 만든 영화가 최고다. 조금 더 친절히 말하자면 젊은 여성에 대한 영화는 젊은 여성이 만든 영화가 최고다. 95년생 캐나다인 작가이자 감독인 엠마 셀리그먼(Emma Seligman)의 첫 장편 데뷔작 '시바 베이비(Shiva Baby)'가 그렇다.


다니엘과 엄마 사이를 갈라 놓는 나무 한 그루


 어떤 사건을 직접 겪고 지켜본 사람이 만든 영화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결이 다르다. 소재가 가공되는 과정이 짧아서 그런지 무언가가 덧씌워지지 않은 듯한 생생함이 있다. 특히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그것이 영화가 되는 시점 사이의 텀이 짧을 때 터져 나오는 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여성이 주인공인 장편영화에서 그런 기운을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대 초반인 여성 감독의 장편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감독의 자전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한 '시바 베이비'는 어떠한 종류의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동명의 단편영화(엠마 셀리그먼의 NYU 졸업영화)에서 출발한 '시바 베이비'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매우 있어요


 실제로 슈가 베이비 역할을 해본 주변 사람들의 경험과 자신이 보고 자란 유대교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시바 베이비'를 만든 엠마 셀리그먼. 그 덕분에 이제껏 보기 어려웠던 신선한 대사들과 그 대사들을 내뱉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페미니즘 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바로 옆에 본인의 슈가 대디가 있고, 배우자와 아이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홀로 짊어진 사업가 여성한테 '걸 보스 타입은 별로라서요'라고 말하는 주인공 다니엘. 그런 다니엘에게 '넌 창녀야'라고 말하지만 결국엔 유일하게 다니엘의 상황을 이해하는 같은 세대의 여성 마야, 그 세대의 여성들에게 '너네도 운전 할 수 있니?'라고 묻지만 정작 본인의 면허는 만료된 노년의 여성 미시즈 브론스테인까지.


가장 마음이 뻥 뚫렸던 장면. 연출도 좋았지만 대사 때문에 엄청 웃었다. 'cool, awesome, great, awesome'.


 여성인 옛 애인과 슈가 대디를 앞에 두고 '남자친구는 있니?', '쟤는 로스쿨 간다는데 넌 취업했니? 근데 전공이 뭐라고?', '살 빠졌니?' 같은 질문이 사방팔방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시바 장례식. 그 안에서 핀볼 게임 마냥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다니엘의 모습이 우리네 명절 풍경과 다를 바 없다. 한국에선 생소한 유대교 문화가 배경이지만 우리는 그 압박감을, 그 공기를 너무나도 잘 안다. '시바 베이비'는 그 묵직한 공기 속에 러닝타임 내내 같은 장소에서 이야기가 흘러 간다. 하지만 수시로 바뀌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 때문에 다니엘의 감정 역시 미친듯이 오르내린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보기 힘들 정도로 감정을 소모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재치를 놓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오히려 촬영장소가 한 곳이라는 사실이 패기 넘치게 느껴진다.


'시바 베이비'는 국내에선 왓챠플레이에서만 볼 수 있다.


 언젠가부터 '잘 만든 영화'와 '나를 비춰볼 수 있는 영화' 사이의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좋은 영화긴 한데 이 이야기에 내가 있었나?' 싶은 찝찝한 마음이 피어 오르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다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깊이 마음을 내어주게 되는 영화는 결국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보단 '꼭 내 얘기 같은 영화'다. 근데 그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영화를 만나면 미치는 거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고 그런 거다. '시바 베이비'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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